김건우 金建佑

학생운동 대통령표창(1996)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안동(安東)
이명(별칭)
호: 응천(應天), 이명: 김원현(金元顯)
출신지
경북 안동(安東)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1996)

주요 활동

1943년 안동농림학교 재학 중 명성회 가입, 항일 의식 고취, 무력 항쟁 계획 수립

관련 조직

안동농림학교 명성회

생애

1926년 7월 21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안동면(安東面) 법상동(法尙洞, 현 안동시 법상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호는 응천(應天)이다. 김원현(金元顯)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42년 안동농림학교(현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임과(林科)에 재학하던 1943년 여름, 비밀결사 명성회(明星會)에 가입해 항일 활동을 하였다. 연락 임무를 담당하고, 회지(會誌)를 제작할 때 등사 원지(原紙)에 글씨를 쓰는 필경·등사·제본 등의 일을 도왔다. 명성회는 1943년 4월 하순경 안동농림학교 출신 이정선(李貞善)을 중심으로 조직된 비밀결사다. 이정선은 일본 유학 중 만난 이회술이라는 인물에게 무선 통신, 선전 등을 교육받고 일본이 곧 패망하니 귀국하여 비밀결사를 조직하라는 지시를 받고 돌아왔다. 또한 이회술에게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여러 활동과 머지않아 광복군이 국내로 진입할 것이라는 정보 등을 전해 들었다. 명성회는 안동농림학교 9회·10회 입학생, 경주중학생, 일반인 등이 참여한 조직이었다. 일반 대중과 지식인의 항일 사상을 고취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적절한 시기를 기다렸다가 무장봉기를 일으키고자 하였다. 계속하여 동지를 모으고 한 달에 한두 차례 모여 역사서와 사상서를 읽으며 민족의식을 키웠고, 국제 정세와 태평양전쟁 전황, 국외 독립운동 상황 등을 공유하였다. 명성회는 독립이 머지않았음을 선전하고 항일 의식을 고취하고자 회지 『あけぼの(아케보노)』(새벽·여명)를 발간하였다. 1943년 10월부터 준비해 1944년 한 해 동안 1~4호를 만들어 배포하였다. 국문과 일본어를 혼용한 8~16쪽 분량의 등사본이었다. 시·시조·수필과 함께 여러 주제의 글을 실었다. 주요 내용은 일본군 소년병 지원을 만류하는 글, 학병의 탈주 소식, 임시정부 발행 『독립신문』이나 신채호의 저서에서 발췌한 글 등 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기사였다. 원고는 회원이나 뜻을 함께하는 인사가 기고하였다. 1944년 11월에는 조선독립회복연구단(朝鮮獨立回復硏究團)과 무장봉기할 때 연대하기로 합의하였다.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은 안동농림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조직된 또 다른 비밀결사체였다. 일본의 패전을 확신한 이들은 1945년 2월 17일 무장봉기를 일으키기로 계획을 세웠다. 안동경찰서와 헌병파견대 무기고를 습격하고, 교통·통신 시설을 차단한 뒤 의성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등 치밀하게 준비하였다. 봉기를 선동하는 벽보를 제작해 붙이고, 확성기로 연합군 승전 소식을 알리는 등 일반인을 무력 봉기에 동참시킨다는 계획도 세웠다. 1945년 2월경 일본 경찰의 사찰이 심해져 조선독립회복연구단원 일부가 체포되었다. 거사를 일으킬 날을 3월 10일로 옮겼으나 관련자 다수가 체포되면서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였다. 1945년 3월 10일 자택에서 체포되어 대구감옥 안동분감(안동형무소)에 수용되었다. 심문을 받으며 재판을 기다리던 중 늑막염을 앓게 되어 1945년 8월 9일 병보석으로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김희곤, 『안동독립운동 인물사전』, 도서출판 선인, 2011. ; 신승훈, 「해방직전(1943~1945)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연구」, 『안동사학』 12, 안동사학회, 2007. ; 『독립유공자 공훈록』,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