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훈 具滋勳

학생운동 애족장(199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능성(綾城)
이명(별칭)
창씨명: 구원무언(具原茂彦)
출신지
충남 공주(公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36년 공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비밀결사 명랑클럽 조직, 일본어사용 금지 및 신사참배 거부, 악질 일본인교사 배척, 미신 타파, 무궁화 식수 장려 등의 활동 전개

관련 조직

공주고등보통학교 명랑클럽

생애

1921년 1월 17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현 공주시) 의당면(儀堂面) 도신리(道新里)에서 구관회(具觀會)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5세 때 부친이 사망하였다.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일제 말기의 창씨명은 구원무언(具原茂彦)이다. 1929년 의당공립보통학교(儀堂公立普通學校)에 입학하여 1935년 3월 동교를 졸업하고, 1935년 4월 공주고등보통학교(公州高等普通學校, 1938년에 공주공립중학교로 개칭)에 입학하였다. 1936년 3월 중순 공주 영명학교(永明學校) 설립자인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 우리암(禹利巖, Frank E. Williams)에게 감화받아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하였다. 공주고보 2학년 동기생인 김용갑(金溶甲)·김해인(金海仁)·천영관(千永寬)·최낙권(崔洛權)·김한석(金漢奭)·이용준(李鎔俊)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영명학교 동산, 공산성 웅심각, 곰나루, 마곡사 등지에서 수십 차례 회동하여 조직의 명칭과 목적 및 구체적 활동 지침 등을 논의하였다. 비밀결사의 명칭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려고 ‘명랑클럽’으로 정하였고,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하기 위해 일본어 사용 및 신사참배(神社參拜) 거부, 악질 일본인 교사 배척 등의 활동을 펼치는 한편,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미신·계급·반상 등 인습 타파, 문맹 퇴치, 무궁화 식수 장려 등의 계몽 활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졸업을 앞둔 1940년 2월 공주읍 교외에 있는 웅진강(熊津江) 하원(河原)에서 명랑클럽 조직원들을 만나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한국을 독립시키는 데 매진하기로 다짐하고, 활동 방향을 논의하였다. 이들은 우리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달성하기 위해 반일 의식과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설 것을 결의하였다. 한편, 한국 독립을 위해서는 강대국인 미국과 영국의 원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미국인과 영국인 등 기독교 선교사들과 친분을 쌓는 한편, 한국인을 기독교에 입문시켜 미국과 영국에 친밀감을 갖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 1940년 3월 공주공립중학교 졸업 후 충남 서산군청의 고용원으로 약 1년간 근무하다가 1942년 1월부터 서울 본정(本町, 현 충무로)에 위치한 조선중앙주류배급조합에서 근무하였다. 1942년 3월경 남선전기주식회사 대전지사에 근무하던 명랑클럽 조직원 천영관이 반일적 언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대전헌병대의 가택 수색 과정에서 무궁화에 둘러싸인 명랑클럽 회원들의 사진이 발견되었다. 이로 인해 같은 해 4월부터 6월 사이에 김해인은 대전, 최낙권과 김한석은 도쿄, 이용준은 만주국 신징(현 창춘시), 김용갑은 대구에서 체포되었는데, 이때 서울에서 체포되었다. 1942년 9월 30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43년 7월 22일 가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동일인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구자훈, 『신분장지문원지』, 경찰청. ; 「판결문」, 대전지방법원, 1942.9.30. ; 「具滋勳 가출옥관계서류」, 1943.7.22. ; 국가보훈처 편,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 6,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