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필진 姜必鎭

학생운동 대통령표창(201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창씨명: 대산방홍(大山芳弘)
출신지
경남 진주(晋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2010)

주요 활동

1943년 비밀결사단체 광명회를 조직하여 한국인에게 우리말사용 권고, 독립군 활동 전파

관련 조직

진주공립중학교 광명회

생애

1927년 6월 6일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 진주면(晋州面) 중안동(中安洞, 현 진주시 봉곡동)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대산방홍(大山芳弘)이다. 1943년 진주공립중학교(현 진주고등학교) 재학 당시 하익봉(河益鳳)·박노근(朴魯瑾)·김상훈(金相勳)·정규섭(鄭奎燮)·김용실(金容實) 등 동기생과 함께 광명회(光明會)를 조직하였다. 광명회는 우리 역사를 공부하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향후 일제에 맞서 투쟁할 것을 계획하였다. 광명회는 일제 말기 국내 민족해방운동을 위한 대표적 형태인 비밀결사체였다. 이 단체는 청년·학생층이 주축이 되었으며 무장투쟁론을 민족 해방의 주된 방략으로 삼았다. 이를 위하여 만주 등지로 건너가 무장 부대에 합류하거나, 국외 무장 세력이 국내로 진격할 때 합류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광명회원도 졸업 후 박노근의 아버지와 하익봉의 삼촌이 활동하고 있는 독립군에 투신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무렵, 일제가 일으킨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전시체제화로 통제와 강제동원이 강화되었다.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이 발포 시행되고 노무긴급대책요강, 국민근로보국협력령 등이 연달아 시행되면서 학생들을 전장과 군수공장 등으로 강제동원하였다. 광명회원들은 1944년 9월 진주 지역 학생들과 함께 진해비행장 건설 현장에 강제동원되었다. 강제노역 현장에서 공동 숙식을 하며 노역을 하는 와중에도 다른 광명회원들과 함께 우리말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독립군의 활동을 알리는 등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활동이 드러나 9월 23일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40일간 진해헌병대 영내에서 고문과 함께 자백을 강요받았다. 이후 1944년 11월 부산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고,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다른 광명회원과 함께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45년 6월 9일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9-학생운동사, 1977. ; 변은진, 「일제 말 비밀결사운동의 전개와 성격, 1937~1945」, 『한국민족운동사연구』28,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1. ; 변은진, 「일제말(1937~1945) 각종 ‘불온문서’와 소규모 비밀결사」, 『한국민족문화』42,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2. ; 정혜경, 「국민징용령과 조선인 인력동원의 성격–노무자와 군속의 틀을 넘어서-」, 『한국민족운동사연구』56,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8. ; 『부산일보』 2009.1.11, 2010.2.26. ; 공훈전자사료관 누리집(https://e-gonghun.mpva.go. kr). ; 진주시청 누리집(http://www.jinju.go.kr). ; 진주고등학교 누리집(http://jinju-h.gn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