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환 金奎煥

학생운동 애족장(199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충남 천안(天安)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32년 충청남도 예산공립농업학교 독서회 가입, 1932년 5월 예산공립농업학교 좌익협의회 조직

관련 사건

예산공립농업학교 독서회 사건, 극단 만경좌 사건

생애

1915년 3월 11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광덕면(廣德面) 신흥리(新興里)에서 태어났다. 1930년 충남 예산공립농업학교(禮山公立農業學校)에 입학하였다.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2년 비밀 독서회에 가입하여, 항일 의식을 고취하고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하는 등 항일 학생운동에 나섰다. 1932년 5월 강봉주(姜鳳柱) 등과 함께 독서회 조직을 확대하여 좌익협의회(左翼協議會)를 결성하였다. 산하에 연구부·선전부·에스페란토부를 두어 동지 규합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7월 오일규(吳日圭) 등과 함께 학교 측이 학생들에게 무리한 동원령을 내린 것에 반대하여 동맹휴학을 주도하였다. 일본어 과목을 국어로 표기하는 반민족 처사의 시정, 일인 학생과 한인 학생의 차별 정책 개선, 한인 교사 확대 등을 주장하였다. 이로 인해 주모자로 지목되어 퇴학 처분을 받고, 이후 서울로 올라가 경성기독교청년학관(京城基督敎靑年學館)에 입학하였다. 일제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좌익협의회는 활동이 위축되어 해체되었다가 그해 9월 강봉주 등이 조직을 재건하여 예산공산주의학생동맹(禮山共産主義學生同盟)을 결성하고 항일 투쟁을 이어갔다. 그해 11월 예산공산주의학생동맹이 주도한 극단 만경좌(萬鏡座) 사건이 발생하여 예산공립농업학교 출신이 대거 붙잡혔다. 이때 서울에 있었지만 사건에 연루되어 12월 25일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33년 3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심대로 형이 확정되었다. 옥고를 겪던 중 소위 칙령 제120호에 의해 10월 10일 형으로 감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공주지방법원, 1933.3.30. ; 「판결문」, 경성복심법원, 1933.5.15. ; 「수형인명부」. ; 「신분장지문원지」. ; 『동아일보』 1932.12.25, 12.28, 1933.2.19, 3.19, 3.29, 4.2, 5.9, 5.16. ; 『중앙일보』 1933.1.16, 1.25. ; 『조선중앙일보』 1933.2.4, 2.18, 2.20, 3.10, 3.11, 3.18, 3.19, 3.22, 3.29, 4.2, 4.13, 5.10, 5.16. ; 『매일신보』 1933.5.16.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9권, 197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제13집,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