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홍 姜信洪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신농신홍(神農信洪)
출신지
전북 진안(鎭安)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40년 전주공립농업학교 재학 당시 우리말로 민족 자각을 촉구하는 발언과 ‘한국독립’ 문구를 게시함
생애
1923년 10월 2일 전라북도 진안군(鎭安郡) 마령면(馬靈面) 동촌리(東村里)의 중농(中農) 집안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신농신홍(神農信洪)이다. 1937년 3월 23일 마령공립보통학교(현 마령초등학교) 졸업 후 1938년 4월 6일 전주공립농업학교(현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전주공립농업학교 재학 당시 일제의 민족 차별을 자각하여 동기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발언과 행동을 하였다. 중일전쟁 이후 일제는 전쟁 수행을 위해 한국인에 대한 황민화 정책을 강화하였고, 특히 학교에서 가장 철저하게 진행하였다. 창씨개명, 황국신민서사 제창, 신사참배 강요 외에도 한국어를 수의과목(隨意科目)으로 변경하여 사실상 일본어 외에는 사용할 수 없게 하였다. 반면 일본 역사·일본 지리 등의 교과목 시간을 대폭 늘렸다. 강화된 통제를 받은 학생들 사이에 자발적 민족의식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주공립농업학교에 입학하였다. 1938년 일본인 교사가 가르치는 일본 역사 수업을 듣던 중 경술국치와 관련된 내용을 들으며 그 부당함에 대해 자각하며 민족의식을 키웠다. 1940년 다른 일본인 교사의 ‘조선관(朝鮮觀)’을 듣고 일본인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1940년 4월 말, 학교 탈의실에서 동급생들과 함께 옷을 갈아입던 중 우리말로 “한국 동포여, 눈을 떠라”라고 외쳤다. 5월에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동급생들에게 다시 우리말로 “일본인은 전부 죽여버리자”라고 외쳤다. 같은 달 수업 후 휴식 시간 때 교실 칠판에 ‘한국 독립’이라고 크게 적어 민족의식을 표출하였다. 이러한 사건들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41년 5월 9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항소하였으나 1941년 6월 2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개월로 늘어난 형량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전주지방법원, 1941.5.9. ;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41.6.25. ; 박찬승, 『한국독립운동사 – 해방과 건국을 향한 투쟁』, 역사문제연구소, 2014. ; 곽진오, 「일제와 조선 교육정책 : 조선교육령을 중심으로」, 『일본문화학보』 50, 2011. ; 진안군청 누리집(https://www.jinan.go.kr). ; 마령초등학교 누리집(http://mary.es.kr). ;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누리집(http://jls.h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