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응 權泰應

학생운동 대통령표창(2005)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안동(安東)
이명(별칭)
호 : 동천(洞泉)
출신지
충북 충주(忠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2005)

주요 활동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UTR구락부 조직, 일본 유학 중 33회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서적 탐독 및 독립문제 토론

관련 조직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 UTR구락부, 33회(유학생 비밀단체)

생애

1918년 4월 20일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충주면(忠州面) 칠금리(漆琴里, 현 충주시 칠금동)에서 아버지 권중희(權重喜)와 어머니 민병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호는 동천(洞泉)이다. 안동 권씨 추밀공파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현손이다. 어린 시절 조부 권병억에게 한학을 배웠으며,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다. 1927년 충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1932년 졸업하였다. 졸업한 해에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이하 경성고보)에 입학하였다. 방학 때 고향에 내려오면 야학을 열어 마을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직접 쓴 극본으로 연극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1935년 경성고보 재학 중 염홍섭(廉弘燮)·최인형(崔仁衡) 등과 함께 UTR구락부를 결성해 민족의식을 키웠다. 휴일에 등산을 하며 친목을 다졌으며, 함께 쓰고 돌려 읽는 등산 일지에 교육제도를 비판하는 문구를 적는 등 민족과 식민지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였다. 일본인 교사의 민족 차별 발언과 ‘수탉(일본어로 온도리, おんどり)’이라고 부르며 놀리는 일부 동급생의 멸시도 민족의식을 자각하는 배경이 되었다. 1936년 9월에는 인왕산에 올라 무너진 옛 성벽을 다시 쌓는 모습으로 촬영한 사진을 졸업 앨범에 수록하였다. UTR구락부 활동을 함께 하였던 동기생은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뜻을 담은 사진이라고 회상하였다. 또한 ‘UTR’은 ‘엉터리’의 각 음절 첫 글자 발음을 영어로 옮겨 만든 명칭이라고 증언하였다. 경성고보 졸업 앨범을 교사에게 기증하는 일을 둘러싸고 동기생들과 갈등이 생겼다. ‘천황 폐하와 학교의 은택으로 무사히 졸업하게 되었다’라는 동기 민병선(閔丙瑄) 등의 주장에 UTR구락부 회원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졸업하게 되었다’라고 하며 격렬히 반대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1937년 3월 4일 졸업식 당일 교내에서 UTR구락부 회원과 민병선 외 2명이 치고받는 싸움을 하였다. 교내 폭행사건으로 보름 동안 구금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민병선 등의 폭행 피해가 경미하고 학생 신분이므로 기소 유예되었다. 경성고보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37년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學) 전문부(專門部) 정경과(政經科)에 입학하였다. 염홍섭과 함께 경성고보 제33회 졸업생을 중심으로 33회라는 이름의 유학생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동창생 20여 명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하고 염홍섭·홍순환(洪淳煥) 등과 함께 여러 차례 모임을 가졌다. 자신의 하숙집을 회합 장소로 제공하였다. ‘한국 농촌이 정치·경제적으로 압박받는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만민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해 농민의 해방을 도모해야 한다’, ‘중일전쟁으로 제국주의 국가가 많은 피해를 입고 무너지면 한국은 독립하게 될 것이다’, ‘유학생들은 사치에 빠지지 말고 혁명적 의식을 키워야 한다’는 등의 문제를 토론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하던 중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명목으로 1939년 7월 1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 생활 중 심한 폐결핵을 앓고 1940년 5월 14일 병보석으로 출옥하였다. 1940년 7월 18일 병든 몸으로 귀국하였다. 1941년부터 인천의 결핵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1944년 8월 결혼하고, 고향 충주로 귀향해 요양을 계속하였다. 충주에서 부인과 함께 야학을 운영하였다. 소설과 시를 쓰고, 직접 쓴 극본으로 단오와 추석 또는 정월대보름에 연극 공연을 열기도 하였다. 1945년 광복 후에도 야학에서 문자 보급에 힘썼다. 1947년 5월 주간지 『소학생』 45호에 「어린 고기들」을 발표한 후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1월 동요집 『감자꽃』을 출간하였다. 지병이 악화하여 1951년 3월 28일에 사망하였다. 미발표 원고를 포함해 250여 편의 동시와 단편소설 「새살림」, 「양반머슴」 등의 문학 작품을 남겼다. 충주 탄금대에 대표작 「감자꽃」을 새긴 노래비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京高特秘 第563號, 京城公立第一高等普通學校 生徒의 暴行에 関한 件」, 1937.3.10, 『思想에 關한 情報綴 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京高特秘 第317號의 1, 京城公立第一高等普通學校 卒業生의 暴行에 関한 件」, 1937.3.13, 『思想에 關한 情報綴 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京高特秘 第563號의 1, 京城公立第一高等普通學校 卒業生의 暴行에 関한 件」, 1937.3.22, 『思想에 關한 情報綴 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京高特秘 第2156號, 廉弘燮의 治安維持法違反事件에 関한 件」, 1940.11.2, 『思想에 關한 情報綴 12』,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3 재일본한국인민족운동자료집, 1978. ; 국가보훈처 편, 『조선·대만 특별요시찰인 약식명부』, 2016. ; 도종환, 「권태응의 생애와 농민소설」, 『창비어린이』 4, 2006. ; 권영진, 『이민 반세기 - 〈감자꽃〉 작가 권태응 시인을 추모하며』, 선우미디어, 2011. ; 충주 초등국어과 교과 연구회 자료 「권태응 시인의 생애와 작품」, 2006, 충청북도 충주교육지원청 누리집. ; 『독립유공자 공훈록』,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