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 姜日

학생운동 애족장(199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진주(晋州)
이명(별칭)
강성구(姜星求)
출신지
충남 부여(扶餘)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30년 항일격문 살포, 1931년 비밀결사 화성당 조직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비밀결사 화성당 조직 사건

관련 조직

화성당

생애

1911년 3월 25일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장암면(長巖面) 장암리(長巖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이명은 강성구(姜星求)이다. 1926년 6월 고향에서 주민들과 함께 일본 학교 폐지를 주장하며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었으나 미성년자여서 석방되었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부여 지역에서 강일구(姜日求) 등과 함께 학생들의 궐기를 촉구하는 한편, 동조 시위에 동참할 계획을 세웠다. 1930년 2월 유복윤(柳福允)·노명우(盧明愚) 등과 항일 격문을 제작하여 부여농업보습학교(扶餘農業補習學校)에 살포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받았다. 『동아일보』 부여지국 기자로 활동 중 1931년 1월 서진(徐震)·유기섭(柳基燮) 등과 사회주의 운동을 위한 비밀결사체 조직을 도모하고, 같은 달 26일 부여군 규암면(窺岩面) 합송리(合宋里) 농민학원에서 화성당(火星黨)을 조직하였다. 이를 중심으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자, 다시 항소하여 5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 1936년 화성당 재건 운동을 시도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1년 동안 구금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동아일보』 1932.1.9, 1932.6.9. ; 『매일신보』 1932.3.11, 1932.5.23. ; 김용달, 『농민운동-한국독립운동의 역사 28』,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