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태 姜遠太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남 강진(康津)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2001)
주요 활동
광주학생운동 지원 격문 살포, 광주학생운동 지지 동맹휴학 조직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생애
1911년 5월 9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대구면(大口面) 원포리(垣浦里)에서 태어났고, 1924년 대구공립보통학교(大邱公立普通學校)에 입학하여 2학년을 마치고 중퇴하였다. 평소부터 일제 식민지 교육에 불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대구공립보통학교 출신의 윤가현(尹珂鉉)과 광주학생항일운동 동조 및 지원 활동에 나서기로 의기투합하였다. 1930년 1월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고 광주고보 학생들에 호응하는 내용의 격문을 작성하였다. 이어서 대구공립보통학교 교장을 비롯하여 군동(郡東) 옴천(唵川) 성전(城田) 등 강진군 내 8개 보통학교와 대구면 내 각 구장 앞으로 이 격문을 우송하였다. 또한, 모교인 대구공립보통학교의 동맹휴학도 추진하였다. 1930년 1월 15일 동교 상급생인 이상면(李相冕)·이진희(李珍熙)·김상환(金相煥) 등을 동교의 뒷산에 집합시켜, 동맹휴학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학생들에게 동맹휴학 일인 1월 18일 학교에 등교하지 말 것을 종용하고 당일에는 지역을 분담하여 등교 학생들이 적극 동참해달라고 독려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당일 박채언(朴采彦)과 함께 대구면 구수리(九修里) 뒤 도로에서 동교생 김광호(金光鎬) 등이 등교할 때 동맹휴학에 함께해줄 것을 호소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90여 명의 학생이 광주 구속 학생의 석방을 요구하는 동맹휴학에 동참하여 일제의 식민지 교육 정책에 항거하였다.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1930년 3월 14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보안법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위반 등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았고, 곧바로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4월 2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 1930.3.14. ;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30.4.22. ; 『동아일보』 1930.1.25. ; 『조선일보』 1930.1.22, 1930.1.28. ; 강재언, 『光州抗日學生事件資料』, 風媒社,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