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섭 姜旻燮

학생운동 건국포장(1998)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남 강진(康津)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건국포장(1998)

주요 활동

1929년 광주학생운동 당시 시가행진 참여와 격문 제작 살포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관련 조직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 전남청년연맹

생애

1911년 6월 16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성전면(城田面) 영풍리(永豊里)에서 태어났다.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에 3학년으로 재학하던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한일 학생의 충돌을 계기로, 11월 3일 광주고보와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교 학생들이 격돌하였다. 광주역 광장에서 수십 명이 집단 난투를 벌였고, 수백 명으로 불어난 양교 학생들은 대치하다가 교사들의 만류로 귀교하였다. 학교로 돌아간 광주고보 학생들은 강당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였고, 이 자리에서 광주고보 독서회원들을 중심으로 시가 행진이 제기되었다. 이에 고무된 200여 명이 시가로 진출할 때, 학우들과 함께 선두에서 시위대를 주도하며 광주 시내를 시위 행진하였다. 일제 경찰은 이 일로 70여 명의 한인 학생을 검거하여 60여 명을 검사국에 송치하였다. 일제 경찰의 일방적인 대규모 검거 사태에 항거하여 장석천(張錫天)·장재성(張載性) 등 전남청년연맹(全南靑年聯盟) 간부들을 중심으로 제2차 시위운동이 추진되었다. 장재성의 지시를 받은 광주고보 독서회원 오쾌일(吳快一)이 11일 밤 격문 인쇄를 진행할 때, 김홍남(金鴻南)과 더불어 오쾌일을 도와 밤을 새워 격문을 등사하였다. 격문은 “학생 대중이여 궐기하라” “조선 민중이여 궐기하라” 등의 내용을 담은 네 가지 종류로 모두 4,000여 매를 등사하였다. 나아가 격문 배포의 임무를 맡아 200매를 전달받았다. 12일 아침 수업 시작과 동시에 계획대로 광주고보 5학년 학생들이 앞장서고 전교생이 일제히 교문을 박차고 나가 시가 행진을 전개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소지한 격문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光州女子高等普通學校) 부근 가로에 살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일제 경찰에 검거되었고 1930년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금고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제13집, 1977. ; 김정명, 『조선독립운동』 제1권 분책, 原書房, 1967. ; 강재언, 『光州抗日學生事件資料』, 風媒社, 1979. ; 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 『광주학생독립운동사』, 1974. ; 『동아일보』 1930.2.20, 1930.2.22, 1930.3.1. ; 『조선일보』 1930.5.16. ; 한규무, 『광주학생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김성민, 『1929년 광주학생운동』, 역사공간,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