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영 姜文永

학생운동 애국장(1995)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강일영(姜日永)
출신지
전남 해남(海南)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국장(1995)

주요 활동

1929년 광주고보 독서회 결성, 1932년 보성고보 독서회 결성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광주고보 독서회사건, 보성고보 독서회 사건

관련 조직

해남보통학교, 광주고등보통학교, 광주고보 독서회, 보성고등보통학교, 보성고보 독서회

생애

1915년 1월 22일 전라남도 해남군(海南郡) 북평면(北平面) 흥촌리(興村里)에서 출생했으며, 체포 당시 주소는 전남 광주부(光州府) 북구(北區)이다. 이명으로 강일영(姜日永)을 사용했다. 1926년 3월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졸업 후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재학 중 1929년 6월 하순 무등산에서 김동은(金東垠)·김보섭(金普燮)·김상환(金相煥)·오쾌일(吳快一) 등과 함께 장재성(張載性)의 지도를 받아 광주고보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장재성은 1926년 11월 비밀결사 성진회(醒進會) 조직을 주도하고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 주오대학(中央大學)을 중퇴하였다. 그 후 1929년 6월 귀향하여 독서회 중앙본부를 설치하고 광주고보·광주여고보·광주농업학교·전남사범학교 등에 독서회 조직을 지도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1930년 3월 퇴학 처분을 받았으며,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겪었다.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하여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형을 받고 풀려났다. 출옥 후 서울로 올라와 1932년 4월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 3학년에 편입하였으며, 11월 안종서(安鍾瑞)·이상길(李相吉) 등과 함께 조국의 독립과 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독서회를 결성하고 사회주의 연구와 동지 규합, 조직 확대 등의 활동을 벌이다 1935년 12월 광주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6년 5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고 다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31.6.13. ;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6.5.2. ; 『동아일보』 1935.8.24, 1935.12.12. ; 『매일신보』 1930.7.22, 1930.10.22. ; 장규식,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39 : 1920년대 학생운동』, 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한규무,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41 : 광주학생운동』, 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김성민, 『광주학생운동』, 역사공간,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