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석 姜東錫

학생운동 대통령표창(1999)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진양(晋陽)
출신지
경북 상주(尙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1999)

주요 활동

민족의식 함양, 무장봉기 추진

관련 조직

조선독립회복연구단

생애

1928년 8월 25일 경상북도 상주군(尙州郡) 상주읍(尙州邑) 낙양리(洛陽里)에서 태어났다. 1941년 경북 안동군(安東郡)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에 입학하였다. 1943년 일제는 징병제를 시행하여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안동농림학교 3학년생 20여 명은 징병으로 끌려가는 학우의 송별연에서 우리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당하였다. 일제의 탄압이 가중될수록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한글 서적을 돌려 읽으며 항일 의식을 함양하는가 하면, 단파방송을 청취하며 조국 광복을 예견하였다. 1943년부터 안동농림학교 학생들 간에는 자연스럽게 항일 독립운동에 나서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가고 있었다. 1944년 10월 5학년(8회) 권영동(權寧東)·윤동일(尹東一), 4학년 황병기(黃炳基), 3학년 서정인(徐正寅) 등을 중심으로 조선독립회복연구단(朝鮮獨立回復硏究團)이 조직되었다. 이들은 참모부·교화부(敎化部)·연락부·신풍부(神風部)·특공부(特攻部) 등의 조직을 두었다. 동단은 조직 구성에서 보듯이 전투적인 항일 투쟁을 계획하고 있었다. 즉, 교련 수업용 무기를 탈취하여 안동경찰서와 헌병파견대를 습격, 점령한 후 주민들을 궐기시켜 의성(義城)까지 진출하여 대구의 일본군 부대와 교전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후 이들은 안동농림학교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과 경주중학교(慶州中學校) 학생들까지 조직을 확대하여 단원이 60여 명에 달하였다. 당시 동교의 4학년에 재학하며 핵심 역량인 4학년 주축으로 동단에 참여하였다. 한편, 안동농림학교 내에는 별도의 항일 비밀결사가 조직되어 있었다. 1943년 4월 소위 사상 불량이란 이유로 퇴학당한 9회생 이정선(李貞善)이 학우들과 명성회(明星會)를 조직하여 유인물 『새벽』을 간행하였다. 『새벽』에는 항일적 성향의 시와 수필 등을 수록하여 학우들에게 비밀리에 배포하였다.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이 결성되자 명성회는 항일 투쟁에 보조를 함께하였다. 이들은 일본군 육군 기념일로 경비가 허술한 1945년 3월 10일을 거사 일로 정하고 무장봉기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때 통신망 차단의 임무를 맡아 모의 훈련을 하는 등 거사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2월 초부터 각지의 단원들이 체포되면서 조직이 노출되어 3월에 단원들과 함께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재판을 기다리며 옥고를 겪다가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형사사건부」, 조선총독부 재판소. ; 안동농림고등학교동창회, 『안동농림항일투쟁약전』 1978. ; 안동농림학교, 『안동농림40년사』, 1973. ; 안동농림학교, 『안동농림50년사』, 1983. ; 김을동, 『안동판 독립사』, 명문사, 1985. ; 『대구매일신문』 1982.8.5. ; 송지향, 『안동향토지』, 1983. ; 신승훈, 「해방직전(1943~45)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연구」, 『안동사학』 12,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