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갑 金銑甲

학생운동 애국장(1993)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경남 창원(昌原)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국장(1993)

주요 활동

1940년 부산제2상업학교의 경남학도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 투쟁

관련 사건

부산 항일 학생 의거(일명 노다이사건)

생애

1921년 9월 29일생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천가면(天加面) 대항리(大項里)이고, 주소는 부산 좌천동이다. 전시체제기에 전쟁동원정책이 추진되던 1940년 11월 21~22일 일제는 경남 갑종(甲種) 중학 학생들을 동원해 경남지구 갑종중학교 합동야외훈련대회 명목으로 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이 훈련은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군사훈련이었고, 승부가 걸린 대회였다. 이 훈련의 총책임자는 경남지구 위수사령관 및 부산지구 병참사령관 노다이(乃台兼治) 육군 대좌였다. 노다이 대좌는 일본인 학생이 승리하도록 진군·휴식·야영에서 편파적인 계획을 꾸몄고, 한국인 학생들에게 민족적 폄하와 기합을 가하였다. 또 훈련 중 행군이나 보급품 지급에서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을 노골적으로 차별하였다. 2일간 모의전투훈련을 마친 후 11월 23일에는 ‘제2회 경남학도전력증강경기대회’가 열렸다. 입장 순서에서 전년도 우승팀인 동래중학을 비롯하여 부산제2상업학교의 우승을 막으려는 노다이의 편파적 조처로 일본인 학교인 부산중학교보다 늦게 입장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경기에서도 일본인 심판들은 편파적인 경기 운영과 부당한 판정으로 한국인 학교를 차별하였지만, 한국인 학생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동래중학이 우승하였다. 폐회식에서 노다이가 부산중학이 우승하였다고 발표하자, 부산제2상업학교를 비롯한 동래중학 등 한국인 학교 학생들은 한국인 차별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일장기 하강 외면, 일본 국가 거부와 동시에 금지곡인 「애국가」·「아리랑」·「도라지」 등의 노래를 제창하였다. 한국인 학생 1,000여 명은 운동장부터 시내까지 시위행진을 벌이면서, “대한 독립 만세”, “일본놈 죽여라”, “너희들은 일본으로 돌아가라”, “무엇이 내선일체(內鮮一體)냐” 등의 구호를 외쳤다. 또한 경남지구 위수사령관으로서 대회 총책임자인 일본군 대좌 노다이의 관사를 습격하고 그를 구타하였다. 이 사건으로 한국인 학생 200여 명이 붙잡혔고, 주모자로 지목된 15명이 구속 기소되었다. 이때 부산제2상업학교 4학생으로서 체포되어 1941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개월 형이 확정되어 옥살이하였다. 그 뒤 출옥하였으나 고문후유증으로 인해 2주 만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부산학생사건정사편찬위원회, 『부산학생사건정사』, 1967. ; 정세현, 『항일학생민족운동사연구』, 일지사, 1973. ; 김의환, 「일제하 부산의 학생항일독립운동」, 『윤병석교수화갑기념한국근대사논총』, 지식산업사, 1990. ; 부산학생항일의거기념논집편찬위원회, 『부산학생 항일의거의 재조명』, 계림출판사, 1992. ; 강대민, 『부산지역학생운동사』, 국학자료원, 2003. ; 김호일, 『한국근대 학생운동사』, 선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