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준 奇會俊

학생운동 대통령표창(2016)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남 장성(長城)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2016)

주요 활동

1929년 광주학생운동 참여, 1930년 일본 재료요조선유학생친목회(在兩洋朝鮮留學生親睦會) 결성, 1931년 일본 전협 산하 ‘무청(無靑)’ 교토지국 활동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생애

1910년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남면(南面) 덕성리(德星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남진(南眞)이다. 1929년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4학년 재학 중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0년 2월 24일 보석으로 출옥한 상태에서 3월 1일 재판을 받고 금고 4개월, 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광주학생항일운동 관련하여 퇴학당한 한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편입생을 모집하던 일본 교토부(京都府) 소재 사립 료요중학교(兩洋中學校)로 유학을 갔다. 같은 해 6월 21일 재료요조선유학생친목회(在兩洋朝鮮留學生親睦會)를 결성하고 전일본노동조합협의회(全日本勞動組合協議會, 전협) 산하 교토섬유산업노동조합(京都纖維産業勞動組合)과 함께 활동하였다. 같은 해 10월 22일 동 친목회가 주최한 웅변회에서 ‘조선 학생이 배워야 할 것’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일본의 노동자, 농민과 단결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여 절대적 해방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웅변회도 중단되었다. 일본 전협 산하 ‘무청(無靑)’ 교토지국(京都支局)의 책임자로 활동하던 중 1931년 8월 26일 일본 공산당 지방위원회 및 당 외 조직 관계자에 대한 일제 검거 과정에서 붙잡혔다. 같은 해 11월 28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나 재판 및 수형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1934년 11월 12일 충청남도 대전(大田)의 한 숙박업소에서 행려병사자로 발견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동아일보』 1930.2.4, 2.20, 2.22, 2.26, 3.1. ; 『매일신보』 1930.2.26, 1934.11.15. ; 『조선일보』 1934.11.15. ; 「수형인명부」. ;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사상월보』 제1권 제6호, 1931.9.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제13권, 1976. ; 박경식 편,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 2(1)권, 3(2)권, 삼일서방, 1976. ; 송상도, 『기려수필』, 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