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염 權泰琰

학생운동 대통령표창(1998)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안동
출신지
경북 안동(安東)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1998)

주요 활동

비밀결사 명성회를 조직하여 민족의식을 함양, 1944년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을 조직하여 항일 무장봉기를 계획

관련 조직

안동농림학교 명성회

생애

1927년 7월 10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안동읍(安東邑) 서부동(西部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이다. 1941년 안동의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에 입학하였다. 1943년 일제는 징병제를 강제하여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이때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한글 서적을 돌려 읽으며 항일 의식을 함양하는 한편, 단파방송을 청취하며 조국 광복을 예견하였다. 안동농림학교 학생 간에는 자연스럽게 항일 독립운동에 나서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가고 있었다. 1942년 소위 사상 불량이라는 이유로 안동농림학교를 퇴학당한 이정선(李貞善)이 일본 도쿄(東京) 문화학원 유학 중 임시정부 특파원 이회술(李會述)에게 비밀결사를 조직하라는 지령을 받고 1943년 초 귀국하였다. 이정선은 친분이 있던 안동농림학교 3학년(9회) 교우를 중심으로 동년 4월경 비밀결사 명성회(明星會)를 조직하였다. 이정선을 비롯하여 박동렬(朴東烈)·김한룡(金漢龍)·고영찬(高永讚) 등 학우와 함께 명성회 결성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한글 서적을 돌려 읽으며 항일 의식을 함양하는 한편, 계몽용 회지인 『새벽』을 간행하였다. 1944년 1월경부터 항일 성향의 시와 수필, 국제 정세 등을 수록한 『새벽』 50여 부를 등사하여 명성회 회원은 물론 일반인, 경주중학교, 대구사범학교 학생 등에게도 배부하였다. 이와 별도로 안동농림학교 내에는 권영동(權寧東), 윤동일(尹東一), 황병기(黃炳基), 서정인(徐正寅) 등을 중심으로 1944년 10월 조선독립회복연구단(朝鮮獨立回復硏究團)이 조직되었다. 명성회 회원들은 조선독립회복연구단과 연계하여 전투적인 항일 투쟁을 추진하였다. 교련 수업용 무기를 탈취하여 안동경찰서와 헌병파견대를 습격, 점령한 후 주민들을 궐기시켜 경북 의성(義城)까지 진출하여 대구의 일본군 부대와 교전할 것을 계획하였다. 일본군 육군 기념일로 경비가 허술한 1945년 3월 10일을 거사 일로 정하였다. 그러나 2월 초부터 각지 단원들이 체포되면서 조직이 노출되어 3월에는 단원 모두가 체포되고 말았다. 3월 초 다른 단원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하였고, 재판을 기다리며 옥고를 겪었다. 1945년 광복을 맞아 기소유예로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형사사건부」, 조선총독부 재판소. ; 안동농림고등학교동창회, 『안동농림 항일투쟁약전』 1978. ; 안동농림학교, 『안동농림40년사』, 1973. ; 안동농림학교, 『안동농림50년사』, 1983. ; 김을동, 『안동판 독립사』, 1985. ; 『대구매일신문』 1982.8.5. ; 송지향, 『안동향토지』, 1983. ; 신승훈, 「해방직전(1943~1945)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연구」, 『안동사학』 12,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