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기 趙承基

의병 애족장(199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한양(漢陽)
출신지
경북 영양(英陽)
운동계열
의병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896년 영양지역에서 조직된 의병부대를 지휘하며 김도현 의병장을 지원

관련 사건

전기의병(조승기 의병부대, 김도현 의병부대)

관련 조직

조승기 의병부대, 김도현 의병부대

생애

1836년 8월 2일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 일월면(日月面) 주곡리(注谷里, 주실마을)의 호은종택(壺隱宗宅)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호는 남주(南州)이다. 일찍부터 이만도(李晩燾)·김도현(金道鉉) 등과 같이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던 유림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1878년 (음)1월 25일에는 서원의 복구를 청하는 경상도 유생들의 연명상소에 이름을 올렸다. 1896년 영양지역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한 후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실시로 의병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1896년 1월 김도현이 경북 안동(安東)에서 동료를 모아 유시연(柳時淵) 등과 함께 청량산(淸凉山)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경북 영양·봉화(奉化)·영주(榮州)·영천(永川)·선성(宣城) 일대를 다니면서 의병봉기를 촉구하였다. 그러자 수리(首吏) 남두환(南斗煥) 형제 등 사족을 포함 하여 향리들과 함께 의병봉기 권유에 호응하면서 의병부대를 조직하였고, 이후 대장(大將)으로 추대되었다. 그리고 영양을 중심으로 영채(營寨)를 세우고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 일본과 친일정부에 협력하는 이들을 단속하였다. 1896년 2월 아관파천(俄館播遷)이 일어나고 친일내각이 숙청되면서 단발령 등의 조치가 취소됨에 따라 의병활동을 종결하였다. 저서로 『남주선생문집(南洲先生文集)』(간행연도미상)을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승정원일기』. ; 『향산일기』. ; 「조승기 간찰」.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2, 1970. ; 국사편찬위원회 편, 『주한일본공사관기록』 11,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