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동 趙福同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북 순창(淳昌)
운동계열
의병
포상훈격
애족장(2016)
주요 활동
전북 순창 출신으로 최산흥 의진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및 밀정 처단
관련 조직
최산흥 의병부대
생애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팔등면(八等面) 대자리(大字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2년생으로 추정된다. 주막업에 종사하였으며, 최산흥(崔山興)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최산흥은 이웃한 전북 순창 구암면(龜岩面) 통안리(桶安里) 출신의 의병장으로 1906년 10월 이경춘(李慶春) 의병부대를 시작으로 이후 이석용(李錫庸) 의병부대, 양윤숙(楊允淑) 의병부대 등, 호남지역의 주요 의병부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최산흥이 양윤숙 의병부대의 중군장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의병부대에 합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1909년 (음)3월 30일 최산흥의 지휘 아래 동료 의병 60여 명과 함께 전북 임실(任實) 용광촌(龍光村) 주민 모씨로부터 엽전 30냥과 마포(麻布) 6필을 모집하였다. (음)4월 1일 동료 의병 20여 명과 함께 같은 마을에서 엽전 15명과 마포 3필을 군자금과 군수품으로 모집하였다. 1909년 (음)9월 30일 전북 순창 회계남면(廻溪南面) 죽림촌(竹林村)에서 양윤숙 의병부대의 후군장 이국찬(李國贊), 의병 김태일(金太一)과 함께 일본군의 밀정 이용안(李龍安)을 처단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 일본군에 붙잡혔다. 1909년 11월 15일에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 1909. 11. 15.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1,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