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삼 鄭壹三

의병 건국포장(1995)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정기삼(鄭基三)
출신지
전남 함평(咸平)
운동계열
의병
포상훈격
건국포장(1995)

주요 활동

1907년 1월부터 1908년 3월 경까지 김태원 의병부대에서 활동

관련 사건

후기의병

관련 조직

김태원 의병부대

생애

1885년 7월 19일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평릉면(平陵面, 현 나산면) 상축리(上丑里)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 함평군 적량면(赤良面) 옥상(玉上)에 거주하였다. 김태원(金泰元)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 이후 전국에서 다시 항일의병투쟁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김태원 의병장은 1907년 10월 전남 나주(羅州)에서 의병부대를 일으키고 의병을 규합하였다. 이 무렵 김태원의 처남인 오영찬(吳泳瓚), 동지 최득권(崔得權) 등 10여 명과 함께 엽총 16정으로 무장하고 김태원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10월 30일 김태원 의병부대는 기삼연을 맹주로 한 호남창의회맹소에 합류하였다. 1907년 12월 중순 김태원 의병부대 소속으로 함평 일대로 이동해 전열을 정비하였다. 이후 1908년 1월 3일 함평주재소를 습격해 성공한 후 기세를 올렸다. 그해 2월 함평 읍내에 주둔하면서 일제의 기관을 타격하고, 일본인을 모두 처단하였다. 이 무렵 김태원 의병부대는 300여 명의 군세와 총기 140여 정을 갖춘 큰 부대가 되었다. 이러한 활동 중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에 맞서 항전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기삼연 의병장이 사망하면서 의병부대의 활동이 위축되었다. 그럼에도 1908년 3월까지 호남 일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며 항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羅秘發 제26호 暴徒 加盟 名簿에 관한 報告」, 1908. 2. 1, 『暴徒에 關한 編冊』. ;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독립운동사자료』9, 1980. ; 조동걸, 『한말의병전쟁』,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1. ; 홍영기 편, 『의중태산(義重泰山)』, 죽봉김태원의병장기념사업회, 1998. ; 홍영기,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 일조각,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