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학 趙在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북 순창(淳昌)
운동계열
의병
포상훈격
애족장(2018)
주요 활동
1908년 김영백 의병부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 전개
관련 사건
후기의병(김영백 의병부대)
관련 조직
김영백 의병부대
생애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하치등면(下置等面) 옥산리(玉山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9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부터 김영백(金永伯) 의병부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김영백은 1907년 10월 전남 장성군(長城郡) 북이면(北二面)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최대 1,000여 명 규모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전라도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펼쳤다. 김영백 의병부대는 1908년 전북 흥덕군(興德郡) 방문산(方文山)에서 일본군에게 피해를 입혔고, 1909년 12월 해산할 때까지 일본군 수비대와 자주 교전하면서 활동하였다. 1908년 김영백 의병부대에 합류한 후, (음)2월 동료 5명과 함께 순창군 상치등면(上置等面) 북실리(北實里)에 사는 김아무개(金某)의 집에서 엽전 20냥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또한 같은 달 동일한 방법으로 상치등면 사기점리(沙器店里)의 김아무개(金某)으로부터 엽전 22냥을 징수하였다. 이러한 군자금 모집 활동 등을 이어가다가 1909년 10월경 전주경찰서에서 파견한 변장수색대에 붙잡혔다. 1909년 10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高秘收 제1382호 暴徒逮捕의 件」, 1909. 10. 22, 『暴徒에 關한 編冊』. ; 「高秘發 제73호 暴徒搜索의 件」, 1909. 10. 26, 『暴徒에 關한 編冊』. ; 「高秘發 제77호 暴徒大討伐의 件」 1909. 11. 9, 『暴徒에 關한 編冊』.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1,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