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학 趙聖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남 광주(光州)
운동계열
의병
포상훈격
건국포장(2015)
주요 활동
1909년 신보현 의병부대에서 활동
관련 사건
후기의병(신보현 의병부대)
관련 조직
신보현 의병부대
생애
전라남도 광주부(光州府) 동문내(東門內) 구교동(舊校洞)에서 태어났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21세이므로 1889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9년부터 신보현(申甫鉉) 의병부대에 들어가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신보현 의병장은 1908년 5월 전북 순창군(淳昌郡) 복흥면(福興面) 일대에서 40여 명의 의병들을 모아 의병부대를 조직한 후, 1909년 12월까지 전라도 일대에서 일제 군경과 수차례 전투를 벌였다. 특히 신보현 의병장은 1908년 11월 26일 약 200여 명의 부대원을 이끌고 순창군 하치등면(下置等面) 내동(內洞)에서 순창수비대 토벌대와 교전하였다. 이후에도 신보현 의병부대는 순창 일대에서 활동하면서, 이성화(李成化) 의병부대와도 연합해 항일투쟁을 펼쳤다. 1909년 3월 경부터 신보현 의병부대에 참여한 후, 같은 해 4월 30일까지 약 30여 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무기를 휴대하고 순창군 일대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그해 10월경 붙잡혀 일제 헌병에게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09년 11월 1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옥고를 겪다가 1910년 8월 칙령 제325호 대사령에 의거해 사면되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 1909. 11. 19. ; 「수형인명부」.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1,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