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태 金京太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북 부안(扶安)
운동계열
의병
포상훈격
애족장(1995)
주요 활동
1909년 서응오의진에 참여하여 활동
관련 조직
서응오의진
생애
1886년경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 우산내면(右山內面) 중계리(中溪里)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집안 배경 및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 없다. 1907년 정미의병(丁未義兵)의 항쟁이 전개되었다. 정미의병의 항쟁 후반기인 1909년 초 서응오(徐應五)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의병 활동에 나섰다. 일제의 재판 기록에 따르면 1909년 2월 25일부터 약 보름간 서응오의 지휘하에 총기로 무장한 10여 명의 의병과 함께 부안군 내의 각 마을을 다니며 의병들을 모집하고 군자금을 모으며 일본군에 대한 유격전에 나섰다. 실제 활동 기간은 보름 이상이었으나 재판시 형량을 줄이려고 행적이 확인된 최소 기간만을 인정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1910년 초 일본군에 체포되어 같은 해 4월 4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통감부 검사 시미즈 다카지로(志水高次郞)의 입회하에 이른바 폭동죄의 종범(從犯)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1910년 경술국치 당시 대사령으로 사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김경태) 판결문」(1910.4.4),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1,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