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향강 발행지 터

중국 장소

위치 정보

주소 (한글)
홍콩 중환 황후대도중 88호
주소 (현지)
香港 中环 皇后大道中 88号

역사적 의의

1913년 12월 20일 박은식 선생이 《향간잡지》를 발행했던 곳

설명

1859년 9월 30일 황해도에서 출생한 박은식(朴殷植)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독립지사이자 애국계몽운동가요 학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황성신문》주필로서 국권침탈 이전 이미 일제의 침략정책을 비판하고, 국민들에게 자주독립정신과 애국사상을 고취하였다. 1904년에는 《대한매일신보》주필로 대한제국의 취약성과 일제의 잔혹함을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조약의 진상을 폭로하고 규탄했다. 을사조약 이후 대한자강회, 신민회 등 애국계몽 단체에 가입하여 활발한 활동을 벌임과 동시에 교육 개혁과 유교 개혁을 통해 민력 개발과 국력 강화를 강조하였던 박은식은 한일합병 후 망국의 한을 달래며 복국(復國)의 뜻을 굳히고 1911년 6월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만주에서는 직접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다양한 한국고대사 관련 서적을 저술하였다. 1912년 5월부터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독립운동가들과 중국인 지사를 만나 독립운동의 방법을 협의한 박은식은 이해 7월 상해에서 신규식ㆍ홍명희 등과 동제사(同齊社)를 조직하였다. 당시 중국의 혁명파 인사들과 널리 교유하였던 박은식은 동제사를 기반으로 한중 양국민의 결속 강화를 위한 신아동제사(新亞同濟社)를 조직하였다.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전제적 통치형태에 반대하는 혁명파와 교류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박은식의 관심은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언론활동을 통한 민족의식의 고취에 있었다.
마침 이 무렵 김범재(金凡齋)의 요청이 있자 이에 응하여 1913년 10월 7일 상해로부터 홍콩에 도착한 박은식은 황후대도중(皇后大道中) 88호 2층에 기거하며 이곳에서 두 달의 준비를 거쳐 1913년 12월 20일 정론성잡지인 《향강잡지》를 발행하였다. 1914년 봄 재정적인 이유 혹은 위안스카이의 간섭으로 잡지가 정간되자 상해로 되돌아갈 때까지 반 년간 박은식은 잡지사에서 숙식하며 오로지 집필과 편집에 몰두하였다.
향강잡지사가 자리했던 곳은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탓에 이미 고층빌딩이 들어서 있다. 1977년 건축공사가 진행되면서 84호에서 90호까지 한 지번으로 통합되었다. 이전 향강잡지사 자리는 현재 건축물의 중간에서 우측으로 치우친 곳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