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한인귀환 고별식 개최지 (승리회관)

중국 건물

위치 정보

주소 (한글)
광동성 광주시 여만구 사면북가 53번지
주소 (현지)
广东省 广州市 荔湾区 沙面北街53号 广东胜利宾馆(沙面岛店)

역사적 의의

1946년 4월 한교협회와 한적사병집훈총대가 중국 측 대표인사와 한인귀환 고별식을 개최한 곳

설명

광저우(廣州)지역 한인의 귀환은 중국육군총사령부와 연합군총사령부의 귀환교섭 결과에 따라 추진되었다. 1946년 4월 귀환일이 확정되자 한교협회와 한적사병집총훈대는 고별식을 거행하였다. 송별회는 4월 20일 오후 2시 사면沙面의 승리빈관(胜利宾馆)에서 열렸다. 광둥성과 광저우시 정부 및 언론계 인사들이 참석하였다. 대부분의 한인들은 생활기반이 붕괴되어 귀환하려는 인원이 많았다. 최덕신은 귀환 당일인 1946년 4월 24일 “아침 광동 일우청천(一遇靑天)에 나부기는 태극기를 내리고 (중략) 동포 3천여 명과 더불어 광동성을 출발하였다”고 회고하였다. 한인들은 5월 1일 부산에 도착하였으나 배에서 콜레라가 발생하여 상륙이 지연되었다가 5월 20일 입항하였다. 한편 한교협회 결성 당시 이사였던 김종혁(金從革)은 광저우에 남았다. 1946년 3월말 최덕신 다음으로 이사장을 맡아 한교협회 운영을 총괄했다. 10월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의 주화남판사처장(駐華南辦事處)으로 임명되면서 기존 한교 업무는 화남판사처가 담당하게 되었다.

승리빈관은 20세기 초 영국인이 건립한 ‘빅토리아호텔(Victory Hotel, 胜利酒店)’이 전신이다. 현재에도 호텔로 사용되고 있으며, 2004년 내외부 리모델링을 진행하였다. 건물 1층 내에 호텔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그마한 전시관이 있으며, 대표적인 혁명파 인사 궈모러(郭沫若)의 친필 현판승리빈관이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