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 한인 독립운동가 구금지(샤먼일본영사관)

중국 건물

위치 정보

주소 (한글)
복건성 하문시 고랑위 일본영사관 건물
주소 (현지)
福建省 厦门市 思明区 鼓浪屿街道 鹿礁路 24·26·28号 日本领事馆旧址

역사적 의의

독립운동가 이강·이기환 등이 붙잡혀 구금된 샤먼일본영사관

설명

샤먼(厦門)은 1841년 청(靑)과 영국의 아편 전쟁으로 강제 개항되었다. 미국·프랑스·독일 등의 서구 열강들은 구랑위(鼓浪嶼)로 몰려들어 영사관을 설치했으며 일본도 이곳에 영사관을 개설했다. 샤먼일본영사관에 투옥된 인물로는 이강(李剛)·이기환(李箕煥)·이윤병(李潤炳)·이명재(李明齋) 등이 있다.
이강은 상하이(上海)에서 임시정부 및 흥사단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동남아 지역으로 활동을 넓히고자 1927년 12월경 샤먼에 왔다. 태백산인삼공사에 근거를 두었고 경비를 마련하고자 인삼 장사를 하였다. 1928년 2월경 장주(漳州) 기독교회당에서 반일(反日)강연을 한 일로 일본영사관의 감시를 받았다. 3월 일본 경찰에게 급습을 당해 이기환·이윤병·이명재 등과 함께 일본영사관으로 붙잡혀 갔다.
개성(開城) 출신인 이기환은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한 의열단원이었다. 1927년 샤먼에 왔으며 취안저우(泉永)에서 민중무장을 위해 조직한 천영이속민단편련처(泉永二屬民團編練處)에서 훈련대장을 맡았다. 1928년 2월 민단편련처의 활동이 부진해져 유기석과 함께 상하이로 돌아가기 위하여 샤먼에 왔다. 여비가 부족하여 유기석이 먼저 출발하였고 이기환은 민국일보사(民國日報社) 내에 기숙하였다. 이강을 만나러 태백산인삼공사에 갔다가 함께 붙잡혔다. 이윤병은 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적십자회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이명재의 활동은 파악되지 않으나 함께 붙잡힌 이강·이기환과 관련된 인물로 보인다. 중·일 교섭 과정에서 이명재·이윤병은 풀려났고 이강·이기환은 타이완(臺灣)을 거쳐 국내로 이송되었다.
샤먼일본영사관은 1898년경 완공되었고 1928년 그 옆으로 경찰서가 증축되었다. 영사관은 지상 2층·지하 1층 건물이며, 경찰서는 두 개의 건물(경찰서·기숙사)을 사용했고 지하에 5개의 감옥이 있었다.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 당시 구랑위는 일본군에 점령되었다가 일제 패망 후 반환되었다. 2006년 ‘고랑서근대건축군(鼓浪屿近代建筑群)’의 일부로 편입되어 제6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第六批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로 지정되었다. 현재 내부 관람이 불가하고 샤먼대학 인문예술고등연구원에서 건물을 관리·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