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 태백산인삼공사
위치 정보
주소 (한글)
복건성 하문시 중산로 일대 (태백삼공사)
주소 (현지)
福建省 厦门市 思明区 定安路 일대
역사적 의의
샤먼 지역의 독립운동 거점으로 활용된 태백산인삼공사가 있던 곳
설명
1910년 국권피탈 이후에도 한인들은 주요 상품인 인삼을 기반으로 중국 각지에서 상업활동을 하였고 독립운동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1920년대 초 샤먼(厦門)에는 정제형(鄭濟亨, 1886-1943)이 설립한 태백산인삼공사(太白山人蔘公司)가 있었다.
평안북도 용천(龍川) 출신인 정제형은 1919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민국임시정부의 국내활동에 참여하였고 1921년경 푸젠성(福建省) 샤먼으로 활동지를 옮겼다. 샤먼의 태백산인삼공사는 ‘五崎頂 16號’에 있었고 1930년대 후반까지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태백산인삼공사와 관련된 주요 독립운동가로는 이강(李剛)·이기환(李箕煥)·이두산(李斗山, 李賢壽)·이정호(李貞浩) 등이 있다.
임시정부 요인이자 흥사단원인 이강은 동남아(南洋)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1927년 12월경 상하이에서 샤먼으로 왔다. 태백산인삼공사에 근거를 두고 활동비를 마련하고자 소규모로 인삼 장사를 하던 이강은 1928년 3월 일본 경찰의 급습을 받아 이기환·이윤병(李潤炳)·이명재(李明齋) 등과 함께 일본영사관으로 붙잡혀갔다.
의열단원인 이기환은 1927년 샤먼에 왔으며 취안저우(泉州)에서 민중무장을 위해 조직한 천영이속민단편련처(泉永二屬民團編練處)에서 훈련대장을 맡았다. 1928년 샤먼으로 돌아왔고, 이강을 만나러 태백산인삼공사에 갔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두산·이정호 부자(父子)는 1928년 1월경 샤먼으로 왔다. 이두산은 샤먼대학 기숙사 김인수(金仁洙)의 방을 거처로 삼았고 이정호는 태백산인삼공사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기숙했다. 1931년경 광저우(廣州)로 활동지를 옮겼다.
2013년 조사에서 태백산인삼공사의 위치를 중산로(中山路) 부근으로 특정하고 조사하였다. 2025년 조사에서는 관련 연구 및 ‘하문시경비도(厦門市警备圖, 1931)·하문시전도(厦門市全圖, 1938)’ 등을 통해 현장을 탐문하였다. ‘五崎頂 16號’는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통합되어 현재 정안로(定安路)의 일부가 되어 과거 모습이 남아있지 않다.
평안북도 용천(龍川) 출신인 정제형은 1919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민국임시정부의 국내활동에 참여하였고 1921년경 푸젠성(福建省) 샤먼으로 활동지를 옮겼다. 샤먼의 태백산인삼공사는 ‘五崎頂 16號’에 있었고 1930년대 후반까지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태백산인삼공사와 관련된 주요 독립운동가로는 이강(李剛)·이기환(李箕煥)·이두산(李斗山, 李賢壽)·이정호(李貞浩) 등이 있다.
임시정부 요인이자 흥사단원인 이강은 동남아(南洋)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1927년 12월경 상하이에서 샤먼으로 왔다. 태백산인삼공사에 근거를 두고 활동비를 마련하고자 소규모로 인삼 장사를 하던 이강은 1928년 3월 일본 경찰의 급습을 받아 이기환·이윤병(李潤炳)·이명재(李明齋) 등과 함께 일본영사관으로 붙잡혀갔다.
의열단원인 이기환은 1927년 샤먼에 왔으며 취안저우(泉州)에서 민중무장을 위해 조직한 천영이속민단편련처(泉永二屬民團編練處)에서 훈련대장을 맡았다. 1928년 샤먼으로 돌아왔고, 이강을 만나러 태백산인삼공사에 갔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두산·이정호 부자(父子)는 1928년 1월경 샤먼으로 왔다. 이두산은 샤먼대학 기숙사 김인수(金仁洙)의 방을 거처로 삼았고 이정호는 태백산인삼공사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기숙했다. 1931년경 광저우(廣州)로 활동지를 옮겼다.
2013년 조사에서 태백산인삼공사의 위치를 중산로(中山路) 부근으로 특정하고 조사하였다. 2025년 조사에서는 관련 연구 및 ‘하문시경비도(厦門市警备圖, 1931)·하문시전도(厦門市全圖, 1938)’ 등을 통해 현장을 탐문하였다. ‘五崎頂 16號’는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통합되어 현재 정안로(定安路)의 일부가 되어 과거 모습이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