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현 金洛鉉

노령방면 건국포장(2009)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김 인노겐치이
출신지
러시아 연해주
운동계열
노령방면
포상훈격
건국포장(2009)

주요 활동

1918년 고려청년동맹 결성, 1920년 니항전투 참여, 1921년 고려혁명군으로 항일무장투쟁, 1922년 블라디보스토크 해방전투 참여, 1930년대 중엽 소련공산당 숙청 사건으로 투옥

관련 사건

고려청년동맹, 고려혁명군 빨치산연합부대, 니항전투, 블라디보스토크 해방전투, 소련공산당 숙청사건

생애

러시아 연해주 니콜리스크(현 우수리스크) 안치헤 끄라브 마을에서 1902년경 태어났다. 러시아에서는 김 인노겐치이로 불렸다. 1906년 아무르 강변의 니콜라옙스크로 이주하여 소학교를 졸업하였다. 1913년부터 부모님을 도우며 어장에서 노동자로 일을 하였다. 1917년 3월에는 통 제조공장 노동조합 집행부로 선출되었다. 1918년 가을 러시아 연해주 니콜라옙스크에서 박병길(朴秉吉, 바실리 박)·정서화·엄지연 등과 함께 고려청년동맹이라는 지하조직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기관지 『앞으로(전진)』를 등사판으로 150여 부를 발간하여 한인 청년의 항일의식 고취와 항일전선 동원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또한 시베리아에 출병한 일본군이 니콜라옙스크를 장악하자 이에 맞서 싸웠다. 1920년 빨치산연합부대에 참여하여 니항(泥港)전투에서 트랴비친부대에 배치되어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러시아 적군 빨치산 트랴비친부대가 니콜라옙스크에 도착하자 고려청년동맹과 유조심이 발기하여 니콜라옙스크와 그 주변 한인들은 빨치산부대를 조직하기로 결정하고 트랴피친에게 상신서를 제출하였다. 그 결과 트랴피친부대 안에 한인 빨치산부대가 조직되었다. 부대의 사령관으로 트랴피친의 측근인 사소프, 참모장은 니콜라옙스크 한인학교 교사 출신인 박 엘리야(朴一)가 임명되었다. 부대는 4개 중대 약 400명으로 이루어졌다. 중대장에는 유조심·임호·김낙현·안기석이 임명되었다. 바로 이 부대가 사할린의용대라고 불리게 되는 니항부대(尼港部隊)이다. 부대원의 구성은 대부분 니콜라옙스크 주민, 주변 금광과 어장의 노동자들로 구성되었다. 일본 원정군의 입성에 임박하여 러시아 빨치산부대는 니콜라옙스크에서 철수하면서 일본인을 사살하는 동시에 도시를 불태웠다. 1921년 고려혁명군에 합류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지속해서 전개하였다. 이듬해에는 1년간 지휘관 과정을 수료하고 적군 제5군 소속 장교가 되었다. 10월 블라디보스토크 해방전투에 참여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1924~1928년에는 레닌그라드 국제사관학교 조선인부대에서 교관으로 일하였다. 1928년 모스크바 프룬제육군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 졸업하였다. 블라고베션스크 주둔 소련군 사단참모장 등을 역임하면서 국제적인 연대를 도모하였다. 1930년대 중엽 소련공산당 숙청 당시 붙잡혔다가 1940년 석방 복권되었다. 이후 경제기관에서 활동하다가 말년에 카자흐공화국 알마아타Almaty, Alma-Ata에서 국가연금을 받으며 생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고려공산당 대표회의 내막 및 국제공산당 鮮人部 경과 상황에 관한 譯文 송부의 건」, 1923.4.23, 『불령단관계잡건-조선인의 부』-鮮人과 과격파(4).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 홍범도편, 1979. ; 임경석, 『한국사회주의의 기원』, 역사비평사, 2003. ; 이지택, 「니항사변과 독립군」, 『신동아』 45, 동아일보사, 1968. ; 반병률, 『1920년대 전반 만주·러시아지역 항일무장투쟁』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49,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 고려대 박사학위 논문, 2010. ; 강만길·성대경 편,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 창작과비평사, 1996.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 18,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