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섭 鄭鎬涉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평남 대동(大同)
운동계열
노령방면
포상훈격
애국장(2017)
주요 활동
대한독립신민단 단원으로 함경도 일원에서 군자금 및 단원 모집
관련 조직
대한독립신민단
생애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용악면(龍岳面)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21년 당시 30세이므로 1892년생으로 추정된다. 러시아로 이주하여, 1920년 대한독립신민단(大韓獨立新民團)에 가입하고 활동하였다. 대한독립신민단은 1919년 김규면(金圭冕)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신교 감리교인을 중심으로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다. 1920년 7월 강원도 출신의 김덕선(金德善)이 김규면의 지시로 러시아 수청(水淸) 부근에 본부, 북간도에 참모부를 설치하여 단원과 군자금 모집을 목적으로 한 의연대(義捐隊)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함경북도로 진입하여 단원과 군자금을 모집한 뒤, 함경남도로 남하하여 활동하였다. 의연대대장에는 김덕선, 반장에는 김기선이 임명될 때 서기를 맡았다. 의연대는 1920년 9월 4일경 설령(雪嶺)이라는 고개 부근의 산중에서 지나는 여객에게 현금 30여 원과 아편 10원 어치를 모집하고, 신민단에 입단하도록 하였다. 같은 달 7일에는 함북 길주군(吉州郡) 자사면 명흥동 허병근의 집에서 동리 주민을 집합시켜 50원을 군자금으로 모금하고 신민단에 입단시켰다. 이후 의연대를 둘로 나누어 함경북도와 함경남도에서 군자금 모집을 지속하기로 하였다. 같은 해 9월 9일 김덕선·김언배·김재봉 등과 함께 함경남도 단천군 화두일면 학선리 정두일의 집에서 김봉선 등 4~5명으로부터 20원을 모집하고 신민단에 가입시켰다. 9월 12일에는 화두일면 신덕리 이창운의 집에서 현금 8원을 모집하고 신민단에 가입시켰으며, 이영진 등 8명으로부터 아편 매각대금 570원을 군자금으로 확보하였다. 9월 15일에는 풍산군 천남면 화덕리 중장동 김흥근 집에서 현금 8원과 500원을 제공하겠다는 서약서를 받았으며, 같은 날 정기일의 집에서 1,000원을 받고 신민단에 가입시켰다. 9월 19일에는 천남면 장동 김병선의 집에서 김태화·허청욱으로부터 2원 50전을 모집하였다. 9월 20일에는 같은 면 금창리 고승두의 집에 주민들을 집합시켰으나 군자금은 모집하지 못하였고, 9월 22일 다시 마을을 찾아가 김정수의 집에서 군자금 100원을 제공하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신민단에 가입시켰다. 9월 24일에는 같은 마을 김승연의 집에 가서 군자금 30,000원을 요구한 결과, 현금 78원과 금덩이 두 개, 현금 19,830원을 제공하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신민단에 가입시켰다. 같은 날 조기창의 집에 가서 50,000원을 요구하였으나 모집하지는 못하였다. 9월 25일에는 풍산군 안산면 노은리 신창규의 집에 주민들을 집합시킨 뒤 김성준 외 5명을 입단시켰으며, 9월 26일에는 북청군 상차서면 신태리의 김창원과 박홍석의 집에 주민을 집합시켜 군자금 모금에 나섰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9월 27일에는 동지들과 함께 주효점의 집에 숙박하면서, 대한독립신민단은 중국 간도에 근거지를 두고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는 단체이며, 자신들은 군자금 및 단원을 모집하러 왔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주효점을 신민단에 가입시켜 돕도록 하였다. 1920년 11월 함경남도 풍산군과 북청군 일대에서 군자금과 단원 모집 활동 중 함흥경찰서에 붙잡혔다. 1921년 11월 2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강도죄, 조선아편취체령 위반으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12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형사사건부」. ; 『동아일보』, 1921. 10. 30. ; 『매일신보』, 1921. 10. 16·19·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