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능효 尹能孝

노령방면 애국장(199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함남 함흥(咸興)
운동계열
노령방면
포상훈격
애국장(1990)

주요 활동

안중근·전명운 의사 유가족 지원, 선전문건 국내 이송

관련 사건

안중근 의거

생애

1882년 3월 18일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 통남면(通南面)에서 태어났다. 1904년 7월 러일전쟁 중에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1907년 최봉준(崔鳳俊)·우덕순(禹德淳)·김치보(金致甫) 등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10월 안중근(安重根)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을 위해 하얼빈으로 갈 때 200원을 지원하였다. 의거 후 사재를 털어 러시아와 영국인 변호사를 선임하여 석방운동을 벌이는 한편, 안중근의 가족과 친일파 미국인 스티븐스를 사살한 전명운(田明雲)의 가족들을 지원하였다. 1910년 10월 이래 이동휘(李東輝)·안창호(安昌浩) 등과 교류하면서 독립운동기지 개척에 힘을 쏟았다. 특히 안창호와 각별한 관계로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의 토지를 구입하여 독립운동의 기반을 구축해 갔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문창범(文昌範) 등과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20년 6월 1일 상하이(上海)의 『독립신문』 기자 이영렬로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공보(大韓民國臨時政府公報)』와 선전물 400여 부를 받아 국내에 배포하려다가 일제 헌병대에 압수당하였다. 같은 해 9월 미국 워싱턴의 조선의우회(朝鮮誼友會) 본부로부터 입회서 용지와 영문 인쇄물을 전달받아 국내에 배포하였다. 1923년 10월 만주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년간 옥고를 겪고, 함흥으로 돌아온 뒤 각지를 다니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金正明 編, 『朝鮮獨立運動』 3, 東京 : 原書房, 1967. ; 國會圖書館 編, 『日本外務省陸海軍省文書』 2,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