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서 趙順瑞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서울
운동계열
노령방면
포상훈격
건국포장(2011)
주요 활동
연해주에서 동의회 발기인, 권업회 파르티잔스크 큰령지회 부총재
관련 조직
권업회, 동의회
생애
서울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61년생으로 추정된다. 1921년 일본 측 기록에서 “약 30년 전부터 사할린 블라디미로프카 지역에서 농업에 종사해 왔다”라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1890년대 초반 러시아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동의회(同義會)와 권업회(勸業會) 파르티잔스크 큰령지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8년 4월 연해주 노보키예프스크 최재형(崔在亨)의 집에서 동의회 조직을 결의하였다. 이어서 총회를 거쳐 총장에 최재형, 부총장에 이범윤(李範允), 회장에 이위종(李瑋鍾), 부회장에 엄인섭(嚴仁燮) 등이 선임되었다. 이때 장봉금(張奉金)·백준성(白俊成)·김치여(金致汝) 등과 파르티잔스크 지역 대표로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1914년 5월에는 권업회 파르티잔스크 큰령지회 부총재에 선임되었다. 권업회는 1911년 6월 1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결성된 발기회를 통해 설립되었는데, 초대 회장에 최재형, 부회장에 홍범도(洪範圖), 총무에 김익용(金翼瑢), 서기에 조창호(趙昌鎬), 재무에 허태화(許太化) 등이 선임되었다. 니콜라예프스크·하바로프스크·노보키예프스크·파르티잔스크·우스리스크 등지에 지회를 조직하여, 1914년 7월 경에는 지회가 10개에 이르렀다. 이후 한인 러시아 이주 50주년 행사를 계획하고 대한광복군 정부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일제의 요구로 러시아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排日鮮人 退露처분에 관한 건(排日鮮人 李瑋鍾 건)」, 1915. 5. 1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 5』. ; 「배일선인유력자명부 이동(異動)에 관한 건」, 1921. 6. 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 12』. ; 『권업신문』, 1914. 6. 14. ; 국사편찬위원회 편, 『재외동포사 총서』 7,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