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선 金德宣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이명 : 김학영(金鶴榮), 김동훈(金東壎)
출신지
강원 이천(伊川)
운동계열
노령방면
포상훈격
애국장(2017)
주요 활동
1920년 의연대를 조직하고 군자금 모집, 대한신민단 임원, 무장항일투쟁
관련 조직
의연대, 대한신민단
생애
1892년경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이천면(伊川面) 탑리(塔里)에서 태어났다. 김학영(金鶴榮), 김동훈(金東壎)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20년 6월 정호섭(鄭鎬涉)·김언배(金彦培)·김재봉(金在鳳) 등과 함께 의연대(義捐隊)를 조직하여 국내에 들어왔다. 이후 함경북도 길주군(吉州郡)과 무산군(茂山郡)을 비롯하여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풍산군(豐山郡)·신흥군(新興郡)·북청군(北靑郡)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단원 확충에 노력하였다. 1920년 7월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소재한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 이명 신민회·대한신민회) 산하 중국 옌지현(延吉縣) 밍웽거우(明月溝)의 참모본부 대장에 임명되었다. 임원진으로 단장 김규면(金圭冕), 부단장 한광택(韓光澤), 총무부장 최상진(崔相鎭), 재무부장 이존수(李存洙), 외무부장 김덕보(金德甫) 등이 선임되었다. 이들은 국내 진공을 위한 독립전쟁 준비와 문화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고자 조직 확대를 꾀하였다. 대한신민단은 이민족 지배 반대, 국내외 자본주의 및 군국주의 타파, 계급 제도 타파, 빈곤 해결을 위한 공산주의 실천, 종교와 미신 부정 등 강령을 내걸며 무기를 소지하고 함경도 일대에서 대대적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만주·러시아·국내에 40여 개의 지구 조직과 2만여 명의 단원을 확보하였다. 단원들에게 교육 활동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며, 농민운동 단체와 식산조합 등을 조직하여 단원과 단원 자제들에게 공부할 길을 열어주었다. 1921년 11월 함경남도 풍산군과 북청군에서 무장항일 투쟁을 전개하다 함흥경찰서에 붙잡혀 11월 2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2년 1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형사공소사건부」. ; 『매일신보』 1920. 11.27, 1921.10.16·10.19·10.22, 1922.6.17. ; 『동아일보』 1921.10.30. ; 홍선표·황민호, 『3·1운동 직후 무장투쟁과 외교활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