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하일 미하일로비치 金미하일 미하일로비치

노령방면 애국장(201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본명: 김인
출신지
러시아 연해주
운동계열
노령방면
포상훈격
애국장(2010)

주요 활동

1919년 일세당, 1920년 연해주 한인사회당을 결성하여 활동, 1920년 ‘3.1운동 1주년 기념식’ 개최 활동, 연해주 4월참변 이후 한인 유격부대 지휘, 1924년 고려공산당창립대표회준비위원회(오르그뷰로) 조직부원으로 코민테른 제5차 대회에 대표로 참석, 1930년 원동변강 당위원회 조선문제 전권대표, 손일선(순얏센)국영농장 정치부장으로 활동,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제17차 당대회에 원동변강 대표로 참석

관련 사건

연해주 3.1운동, 연해주 4월참변

관련 조직

일세당, 대한국민의회, 연해주 한인사회당, 고려공산당창립대표회준비위원회(오르그뷰로)

생애

1896년 러시아 원동 연해주의 한인 마을인 지신허(地新墟)에서 7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김 마트베이의 『원동 소비에트 권력을 위한 투쟁에서 조선인 국제주의자들』에는 12월 20일생으로 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11월 6일생이라는 자료도 있다. 러시아명은 ‘김 미하일 미하일로비치Ким Михаил Михаилович’이고, 본명은 김인으로 알려져 있다. 부인 김 베라 가블릴로브나(Ким Вера Гавриловна)와 사이에 2남 2녀를 두었다. 출생지인 지신허에서 4년제 소학교를 졸업하고, 아지미 마을의 2년제 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전문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라즈돌리노예의 사범학교에 진학하여 교원 자격을 얻었다. 고향인 지신허에서 소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니콜스크-우수리스크 구역의 한인 마을인 시넬리니코보로 이주하여 교사로 근무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대에 징집되었다. 1914년 이르쿠츠크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15년 졸업하고 소위보로 임관하여 독일전선에 파견되었다. 전선에서 볼셰비키들과 교류하며 제국주의전쟁 반대 선전활동을 하였다. 1917년 동원해제되어 연해주로 돌아온 후 혁명운동에 투신하였다. 10월혁명 이후 니콜스크-우수리스크 소비에트 토지국 요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2년에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에 입당하였다. 1919년 7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장도정·김진·최성우·한용헌·전일 등과 함께 일세당(一世黨)을 결성하였다. 일세당은 사회주의 정강을 채택하고 비밀리에 조직된 사회주의정당으로 기관지인 『일세보(一世報)』를 발간하여 주의를 선전하였다. 1920년 1월 31일 연해주에서 정변이 일어나 블라디보스토크 백파정권이 무너지고 중간파와 혁명파의 연립정권이 수립되자 일세당은 비밀단체를 공개 조직으로 변화시켜, 이름을 한인사회당으로 바꾸었다. 1920년 3월 14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의 슬라브정교 사원에서 한인사회당 총회를 개최하고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당시 회장으로는 장도정이 선임되었으며, 임원으로 선전부장 전일, 노동부장 조장원, 재정부장 이영호 등이 선출되었다. 연해주 한인사회당은 1919년 이동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취임과 함께 중앙을 상하이로 옮긴 한인사회당의 연해주 ‘지방위원회’의 지위를 가졌다. 연해주 한인사회당은 반일 적군부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연해주 현지 혁명정권의 지원하에 편성된 부대는 아라스도우리, 수찬(水淸), 이만, 다반 등 4곳에서 조직되었는데, 그 병력은 1,260명이었다. 한편 1920년 2월 23일 대한국민의회의 주도로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민회에서 각 단체 대표자회를 개최하고 이동휘의 부친 이발(이승교)을 회장으로 하는 ‘3·1운동 1주년 기념회’가 조직되었을 때 응접부장으로 선임되었다. 3월 1일 신한촌 한민학교에서 러시아 혁명정부 당국자들과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각국 공사, 그리고 각 신문사 대표를 초청하여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거행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기념식과 시위행진 후 진행된 연회에서는 “베르사이유강화회의에 기대를 걸었지만, 제국주의 열강들의 사욕과 이기심으로 한국의 독립이 거론되지 못했다”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1920년 4월 4일 일제가 ‘연해주 4월참변’을 일으켜 더 이상 공개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지하로 잠적하여 연해주에서 활약하는 한인 유격부대를 지휘하였다. 1922년 말 러시아내전이 종결된 이후 니콜스크-우수리스크시 소비에트 위원으로 선발되었다. 1923년 제1차 니콜스크-우수리스크시 소비에트 대회에 의결권을 가진 대표로 선발되어 참석하였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 당학교에 파견되었다. 당학교 졸업 후 연해현 당위원회에서 근무하였으며, 1924년 3월 연해현 당대표자회의에 의결권을 가진 대표로 선출되어 참석하였다. 1924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된 고려공산당창립대표회준비위원회(오르그뷰로)의 조직부원이 되었다. 준비위원회는 1924년 2월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의 ‘한국문제에 대한 결정서’에 따라 조직되어 코민테른과 교섭할 수 있는 한국의 대표기관으로 인정받았다. 그해 6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제5차 대회에 고려공산당창립대표회준비위원회(오르그뷰로) 대표로 선정되어 참석하였다. 1926년 말 국내에서 김철수에 의해 조선공산당 제2차 당대회가 개최되어 2차 조선공산당이 조직되자 이동휘, 계봉우, 전창순, 김규면, 이용 등과 협의하여 조선공산당 앞으로 “조선공산당에 승순(承順)하고 앞으로 그 뜻을 변경하지 않는다”라는 뜻을 전달하고, 국내의 조선공산당과 연락을 위하여 박응칠을 국내로 파견하였다. 1925년 원동국립종합대학 중국과 야간부에 입학하여 1930년에 졸업했고, 경제 및 중국어 전문가 자격증을 받았다. 재학 중에 원동국립종합대학 내 조선어과를 지도하였다. 1926년부터 1930년까지 블라디보스토크시 검찰관으로 근무하였다. 1929년 ‘원동변강 법원, 검찰국, 수사국 일꾼 제1차 대회’에 대표로 뽑혀 의결권을 갖고 대회에 참가하였다. 1930년 원동국립종합대학 졸업 후 변강 당위원회 조선문제 담당 전권대표로 일하였다. 그해 하바롭스크시 당위원회 제1차 대표자대회에 의결권을 가진 대표로 선발되어 참가했다. 1931년 모스크바에 가서 동양학 전공의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졸업 후 니콜스크-우수리스크구역 손일선(순얏센) 국영농장 정치부장으로 취임하였다. 1934년 1월 5~9일 진행된 제11차 원동변강 당대표자대회에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제17차 당대회의 원동변강 대표 29인 중 1인으로 선발되어, 그해 1월 26일부터 2월 10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린 당대회에 참가하였다. 제17차 당대회 대표 1,961명 중 한인은 김 아파나시와 함께 단 2명뿐이었다. 1935년 1월 31일 이동휘가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세상을 뜨자 자신의 자동차를 가지고 신한촌에 와서 장례식을 지휘하였다. 이후 장례식에 참가한 데 대해 당기관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1937년 4월 29일 내무인민위원회(НКВД) 요원들에게 체포되었다. 혐의는 ‘1934년부터 원동에서 공작한 반소폭동센터 위원이었고, 이 반혁명 조직의 과제를 받아 일본 첩보부에 필요한 첩보 활동을 하여 소련 형법 58-1조 a항, 2조, 8조, 11조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1938년 5월 25일 하바롭스크에서 열린 소련최고재판소 군사법원 비밀재판에서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았다. 선고는 당일 집행되었다. 1957년 4월 9일 소련최고재판소 군사법원에서 재심이 열려 유죄 선고가 취소되어 복권되었다. 김 미하일이 내무인민위원회에 체포된 이후인 1937년 가을 가족들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되었다. 부인 김 베라 가브릴로브나는 1992년 3월 3일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김 블라지미르 저, 조영환 역, 박환 편 해제, 『재소한인의 항일투쟁과 수난사』, 국학자료원, 1997. ; 반병률, 『성재 이동휘 일대기』, 범우사, 1998. ; 임경석, 『한국사회주의의 기원』, 역사비평사, 2003. ; 강호출, 「재노령 고려공산당창립대표회준비위원회(오르그뷰로) 연구」, 『역사와현실』 제28호, 한국역사연구회, 1998. ; 윤상원, 「1920년대 초반 러시아의 한인사회주의자들과 코민테른-김만겸의 활동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제16호, 역사학연구소, 2006. ; Ким М.Т. Корейские интернационалисты в борьбе за власть Советов на Дальнем Востоке(1918~1922)(마뜨베이 김, 『원동 소비에트 권력을 위한 투쟁에서 조선인 국제주의자들(1918~1922)』), Москва, 1979(김 마뜨베이 찌모피예비치, 『일제하 극동시베리아의 한인 사회주의자들』, 역사비평사, 1990). ; Корейцы жертвы политических репрессий в СССР 1934~1938(스탈린 시대 정치탄압 한인 희생자들), том 1, Москва,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