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규 郭炳奎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곽병규(郭秉奎)
출신지
황해 봉산(鳳山)
운동계열
노령방면
포상훈격
대통령표창(2011)
주요 활동
1920년 상하이 대한인적십자회 간호부 양성소 교수, 1922년 시베리아조선인교육회 부회장, 1928년 신간회 사리원지회 부회장으로 활동
관련 조직
대한인적십자회, 시베리아조선인교육회, 신간회 사리원지회
생애
1893년 2월 18일 황해도 봉산군(鳳山郡)에서 태어났다. 한자를 달리하여 곽병규(郭秉奎)라고도 썼다. 고향에서 한학을 수학한 후 기독교에 입문하여 근대 교육을 받았다.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하였고, 3·1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 등지에서 의사로 활동하였다. 1920년 4월 중국 상하이에 있는 대한인적십자회(大韓人赤十字會)에서 설립한 간호부 양성소에서 교수로 활동하였다. 1920년 1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기독교청년회 총회에서 회장에 선임되었다. 1921년 2월 대한인적십자회 대표원으로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 회원과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하였으며, 1921년 3·1절을 기념하여 연회를 여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2년 1월 10일부터 17일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열린 시베리아조선인교육회 대회에서 부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 황해도 사리원 동부예수교회(東部耶蘇敎會)를 중심으로 야학 설립 기금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1928년 1월 신간회(新幹會) 사리원지회(沙里院支會) 부지회장으로 선임되었다. 1928년 10월 18일 이근호(李根浩)·이문재(李門在)가 황해도 지역의 청년동맹 조사과정에서 검거될 당시, 경산병원장(鏡山醫院長)으로 있다가 황해도 사리원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후 1932년 12월경 조선나병예방협회(朝鮮癩病豫防協會) 황해도 지부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동료와 가족에게도 숨긴 채 독립운동의 길을 갔으며 “의술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환자를 봉사하는 직업”이라는 내용을 딸에게 친필 편지를 보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機密 제19호, 鮮人의 행동에 관한 건」, 1921.3.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 1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郭益浩 신문조서」,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3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상해에 있는 적십자회」, 『신한민보』 1920.4.16. ; 「露領朝鮮人의 活動 일주일 동안 성대한 교육회」, 『동아일보』 1922.2.8. ; 「沙里院」, 『매일신보』 1924.11.16. ; 「新幹會支會設立 沙里院에서」, 『동아일보』 1928.1.9. ; 「金漢童事件擴大? 三靑年을 出張逮捕」, 『동아일보』 1928.10.20. ; 「朝鮮癩病豫防協會各地支部의 活動」, 『매일신보』 1932.12.13. ; 이균영, 『신간회 연구』, 역사비평사,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