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규 金河圭

의병 애국장(1995)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김하규(金夏圭), 김하규(金夏奎)
출신지
강원 삼척(三陟)
운동계열
의병
포상훈격
애국장(1995)

주요 활동

1906년 강원도 울진의 김현규(金玄圭) 의병부대 참가, 신돌석(申乭石) 의병부대와 연계하여 의병 활동

생애

생몰년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판결문에 따르면 1906년 당시 48세였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1858년생으로 추정된다. 당시 출신지는 강원도 삼척(三陟)이다. 도사(都事)를 지낸 경력이 있다. 강원 울진(蔚珍)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현규(金玄圭) 의병부대에 참가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이에 반대하는 항일의병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강원도 원주(原州) 주천(酒泉)에서 일어난 삼계(三戒) 원용팔(元容八)의 거의를 시작으로 강원·충북·경북 일대에서 여러 의병부대가 결성되었다. 당시 강원도 최남단 울진에는 여러 의병부대가 모여 들고 있었다. 1906년 2월 19일 경북 영양(英陽)에서 일어난 이현규(李鉉圭) 부대가 울진 불영사(佛影寺)에 주둔하였고, 김현규도 강원도 남부의 각 군을 돌며 1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울진에 도착하였다. 이현규는 이들과 함께 의병부대를 편성하고 본부를 불영사에 두고 군사를 훈련하였는데, 그 규모가 500여 명이나 되었다. 1906년 (음)1월경 김현규의 요청으로 강릉(江陵)에서 활동하던 전 현감(縣監) 황청일(黃淸一)과 함께 20여 명의 포군을 이끌고 김현규 부대에 합세하려 하였다. 그러나 1906년 4월 2일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가 칙령을 근거로 의병 해산을 명령함에 따라 일단 포군을 해산시키고 귀가하였다. 그 뒤 다시 경북 영해(寧海)에서 일어난 영릉(寧陵)의병부대 신돌석(申乭石)과 연계하여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1906년 5월 26일 관군에게 잡혀 서울로 끌려왔다. 같은 해 8월 24일 평리원에서 황청일과 함께 유형 10년을 받고 황해도 황주(黃州)의 섬인 철도(鐵島)로 유배되어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평리원, 1906. 8. 24.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1, 1974.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 1970.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1권, 1970. ; 김희곤 외, 『울진의 독립운동사』, 울진문화원,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