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金相辰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경북 흥해(興海)
운동계열
의병
포상훈격
애국장(2018)
주요 활동
1908년 2월부터 3월 사이에 경상북도 흥해군과 청하군 등지에서 의병활동 전개
생애
경상북도 흥해군(興海郡) 기계면(杞溪面) 모전동(茅田洞)에서 태어났다. 1908년 재판 당시 36세로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1873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 2월부터 3월 사이에 경북 흥해군과 청하군(淸河郡)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다. 헤이그특사사건으로 광무황제(고종)가 강제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 군대도 강제해산됨에 따라 전국에서 의병항쟁이 전개되었다. 소속되어 활동했던 의병부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것이 없다. 다만 활동했던 시기와 지역을 보아 태백산 호랑이로 유명한 신돌석(申乭石) 의병부대를 비롯하여 강진선(姜進善) 의병부대, 서종락(徐鍾洛) 의병부대, 남석우(南錫佑) 의병부대 중 한 곳에 소속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소속을 알기 어려운 의병이 다수 존재하는 것은 경북 지역 의병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경북 의병들은 산간지대가 많은 지리적인 이점을 활용하여 대개 소규모로 게릴라식 활동을 벌였기에 구체적인 자취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08년 (음)2월 말경에 청하군 죽장면(竹長面) 두마동(斗麻洞)으로 가던 중 소속을 알 수 없는 의병 몇 명과 만나 의병부대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은 것을 계기로 의병 활동에 투신하였다. 이후 두마동에서 나머지 동료 의병 60여 명과 합류한 뒤 흥해군과 청하군 등지에서 군수품 모집 활동을 하였다. 2월 말에 청송군 외평계(外坪界) 및 부근 촌락에서 총기와 금전, 음식물, 짚신 등을 받은 것이 확인된다. 또 3월에는 단덕삼(段德三) 외 몇 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흥해군(興海郡) 관동(舘洞)에 사는 황관평(黃官平)으로부터 군자금 모집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체포되어 1908년 10월 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종신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12년 12월 24일 칙령 제23호에 의해 징역 12년으로 감형되었고, 1914년 칙령 제104호에 의거하여 징역 9년, 1915년 칙령 제205호에 의거하여 징역 8년 13일로 감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1, 1974. ; 권대웅, 「정미의병기 경북북부지역의 의병전쟁」, 『지역문화연구』 6,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