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좌장 조선의용대 주둔지 (호가장)

중국 건물

위치 정보

주소 (한글)
하북성 석가장시 원씨현 흑수하향 호가장촌
주소 (현지)
河北省 石家庄市 元氏县 黑水河乡 胡家庄村

역사적 의의

1941년 후자좡(胡家庄)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던 조선의용대가 주둔했던 건물

설명

1941년 11월 12일부터 29일까지 김세광이 이끌었던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제2대 대원 20여 명은 선전물과 지방정형조사 및 자체 정신동원공작 등의 준비를 하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유격 지역에서 무장선전활동에 착수했다. 같은해 12월 2일 원씨현 한 지점에서 좌담회를 하고 같은 날 북영에서 군중집회(참가자 400여 명)를 전개하였다. 3일에는 헤이수이동(黑水河)에서 군중집회(참가자 400여 명)를 열었고, 4일에는 왕자좡(王家庄) 등에서 촌급간부와 좌담회를 개최하였다. 6일에는 소촌(참가자 300명), 10일에는 소장에서 군중집회(참가자 200여 명)를 열었다. 그리고 원씨현 공작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현 민중대회를 12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화북지대의 동향을 주시해 오던 일본군은 화북지대 제2대 공격을 위한 준비를 진행했다. 준비를 마친 일본군은 12월 12일 새벽 300여 명을 동원하여 제2대가 숙영하는 후자좡(胡家庄) 마을을 포위하여 습격하였다. 원래 무장선전공작에서 전투는 가급적 회피하도록 하였으나 일본군이 조선의용대를 공격해오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었다.
화북지대 대원들은 마을 서쪽 고지를 점령하려 하였으나 적의 맹렬한 사격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방향을 남쪽으로 바꾸었으나 역시 적의 사격이 맹렬하였다. 포위당한 것을 알고 다시 고지를 점령하기로 결심하여 기관총과 소총으로 대응사격하면서 포위망 돌파에 나섰다. 대부분의 대원은 탈출했으나 손일봉·최철호·박철동 등 4명은 전사하고 김학철은 중상을 입은 후 피체되었다. 그리고 대장 김세광, 분대장 조열광, 대원 장례신은 부상당하였다. 지대부에서는 대장 김세광이 후자좡 전투에서 중상을 입자 이철중을 파견하여 대신 제2대를 지휘하게 하였다.
현재 후자좡 전적지는 마을입구의 호가장보위전항일열사기념비·조선의용대 주둔지·전투지(마을 서쪽 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호가장보위전항일열사기념비가 세워진 마을 입구에서 처음 전투가 벌어졌고, 이후 조선의용대는 마을 서쪽 산으로 이동하면서 교전을 계속하였다. 이때 총소리를 듣고 후자좡 마을 동쪽에 주둔하고 있던 중국 팔로군이 합류하여 교전하다가 12명이 전사하였다. 전사한 조선의용대원 4명의 시신은 일본군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황베이핑촌(黃北坪村)으로 옮겨졌다.
후자좡 마을에는 조선의용군이 주둔했던 건물(西台小區 8號)이 아직도 남아있으며 조선의용대와 관련한 간단한 전시와 안내판이 부착되어 있다. 주둔지로 사용했던 건물의 주인인 후궈전(胡國辰, 1958년생)씨의 부인은 조선의용대 군가를 기억하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이 노래를 기억하고 있다고 하였다. 김학철이 작사했다고 알려진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나운 비바람이 치는 길가에 / 다 못가고 쓰러지는 너의 뜻을
이어서 이룰 것을 맹새하노니 / 진리의 그늘 밑에 길이길이
잠 들어라 불멸의 영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