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 李哲榮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경주(慶州)
이명(별칭)
이철영(李喆榮)
출신지
서울
운동계열
만주방면
포상훈격
애국장(1991)
주요 활동
가산을 팔아 만주로 도강하여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에 공헌하고 이후 생계회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종사
관련 조직
경학사, 신흥무관학교, 생계회
생애
1863년 10월 16일 서울 중구(中區) 저동(苧洞)에서 아버지 이유승(李裕承)과 어머니 정씨의 6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이명은 이철영(李喆榮)이다. 이항복(李恒福)의 후손으로 경화세족(京華世族)인 경주 이씨(慶州李氏) 가문의 후손이다, 이건영(李健榮)·이석영(李石榮)·이시영(李始榮)·이회영(李會榮)·이호영(李護榮) 등 6형제가 모두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신흥무관학교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 만주지역 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전덕기(全德基)·양기탁(梁起鐸)·안창호(安昌浩) 등이 주도하고 이상룡(李相龍)과 이씨 6형제 등이 참여한 신민회(新民會)는 1907년경 국내활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1909년 봄부터 순차적인 이주를 계획하였다. 이에 1910년 말~1911년 1월에 이씨 6형제가 집안의 모든 가산을 매각하여 주진수(朱鎭洙) 가족과 함께 랴오닝성(遼寧省)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추가가(鄒家街)에 선발대로 도달하였다. 직후에 이상룡도 가사를 정리하고 도착함으로써 이들의 재산을 바탕으로 1911년 4월 류허현 삼원보의 대고산(大孤山)에서 300여 호의 재만한국인을 이끌고 농업협동조직이자 사회기초조직으로서 경학사(耕學社)를 창설하였다. 이때 사장(社長)으로 추대되었다. 경학사는 1911년의 흉작으로 해산되고 이상룡의 주도 하에 1912년 부민단(扶民團)으로 재편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승인을 얻은 서간도지역의 주요 독립조직인 민정분야의 한족회(韓族會)-군정분야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로 발전하게 된다. 이씨 6형제는 경학사 설립과 아울러 독립운동의 근간이 될 무관학교(武官學校)의 설립에도 진력하였다. 1911년경 처음에는 추가가에 설립하였다가, 나중에 합니하(哈呢河)로 자리를 옳겨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설치하였다. 특히 이관직(李觀稙)·이장녕(李章寧)·이동녕(李東寧) 등의 구 대한제국 출신의 군인들을 포섭하여 군사교육의 기반을 갖추고 1919년 만세운동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신흥무관학교의 명칭을 표명하였다. 이들은 600여 명의 생도에게 군사학 및 일반적인 교과 외에도 학교의 운영과 교생의 단련을 위해 병농일치(兵農一致) 교육을 시행하였고, 후일에 규모와 인원이 확장되어 고산자가(孤山子街) 대두자촌(大肚子村)에 교사를 신축하고 3개월에서 6개월의 초등군사반-2년 과정의 고등군사반을 두었다. 또한 퉁화현(通化縣) 쾌대모자(快大帽子), 린장현(臨江縣) 토애(土崖), 하이룽현(海龍縣) 성영하자(聖永河子) 등에 분교를 설치하고, 검성중학(儉成中學) 및 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北路軍政署 士官練成所) 등에도 교관을 파견함으로써 서간도 일대 뿐만 아니라 북간도지역의 독립군단에 주요 인재를 공급하는 중요한 거점으로 기능하였다. 1913년 봄부터 1914년 12월경까지 신흥학교 교장을 역임하면서 교직원을 정돈하고, 학교운영을 위한 각종 활동에 진력하면서 자금의 마련, 생도의 교육뿐만 아니라 식량의 재배, 사옥의 수리 등의 노고를 함께하였다. 한편 만주지역으로 이민한 조선인들은 기초자금의 부족, 외지에서의 고립과 노동협동조직의 결핍 등 여러 어려움에 부딪쳤다. 1918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준(呂準)을 회장으로, 김약연(金躍淵)을 부회장으로 하여 재만한국인의 금융기관 설립, 동포 간의 구호, 농장설립을 위한 농토마련, 중국 북양정부에의 접촉 등을 목적으로 하는 동삼성한족생계회(東三省韓族生計會)가 창설되었다. 이때 생계회의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생계회에 참여하면서도 신흥학교에서의 활동은 계속되었다. 일제 측의 기록에 의하면, 1919년 2월경 신흥학교의 재정운영을 위해 신흥학교 회계계(會計係)로서 이건영과 막내 이호영과 함께 농산물 매매에 진력하던 것이 포착되기도 하였다. 또 다른 일제 측의 보고에 따르면, 1924년까지 이회영과 함께 베이징(北京)을 거점으로 독립활동을 전개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不逞者의 處分」, 1914. 12. 2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4』. ; 「排日鮮人의 動靜에 관한 건」, 1918. 4. 1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6』. ; 「鴨綠江方面 支那領 情況彙報」, 1919. 2. 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8』. ; 「北京在住 朝鮮人의 最近 狀況 報告의 件」, 1924. 3. 6, 『朝鮮人에 대한 施政關係雜件 一般의 部 2』. ; 『앞길』 제11호, 1937. 5. 10.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0, 1976. ;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독립운동사자료』 40, 2004. ; 문일민, 『한국독립운동사』, 애국동지원호회, 1956.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4·8·10권, 1972·1976·1978. ;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민족독립운동사』 2,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