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철 玄哲

만주방면 애족장(1995)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미상
운동계열
만주방면
포상훈격
애족장(1995)

주요 활동

국내에서의 자금모집 활동 및 만주에서의 대한정의단 활동

관련 조직

대한정의단

생애

자료에 따르면 1899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활동단체였던 대한정의단(大韓正義團)에서 발전한 대한군정부(大韓軍政府) 징모국(徵募局)에서 군인 및 요원 모집 당시 “20세 이상 45세 이하의 국문해독 가능한자”로 규정한 것으로 미루어 기초교육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요 활동지역이 함경 지역이라는 점, 만주지역 대종교(大倧敎) 신자들 다수가 함경도 출신 이민자가 상당했다는 점에서 함경 출신이거나 함경 출신 이주가정으로 추정된다. 1919년 5월 대종교 및 공교회(孔敎會)가 왕칭현(汪淸縣)을 중심으로 대한정의단을 창설하여 7개 분단(分團)과 50개 지단(支團)을 운영하였을 때 이에 투신하여 “만반(萬般)의 모험을 갓추 경력(經歷)하면서 일즉 단신으로 무산삼림(茂山森林)을 통하야”라고 표현할 정도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국내의 함경도 경성(鏡城)·명천(明川)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1919년 8월 대한정의단이 복벽주의 계열과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공화주의 계열 간의 문제로 내부 분열이 생겨 복벽주의자들이 퇴출 또는 탈퇴하였으나, 함경도 출신과 대종교인들은 대부분 대한정의단에 잔류하였다. 함경도와 관련성이 추정되는 점, 사망 소식을 임시정부에서 보도한 점으로 보아 공화주의자들과 함께 대한정의단에 잔류하여 자금모집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1919년 10월에 대한정의단이 대한군정부로 개칭하고 임시정부의 승인을 받아 본격적으로 독립투쟁 조직 및 구성원 결속을 강화하면서 중복징수 및 민폐감축 등을 위해 모연대(募捐隊)를 만들었을 때에도 자금모집책으로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독립활동에 매진하던 중 1922년 12월 13일 둥닝현(東寧縣)에서 러시아 영토로 이동하던 중 군자금을 노린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인 강도의 습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의 나이는 23세이며,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은 대한정의단에 대한 헌신 및 자금모집 활동에 대하여 지면에 기사를 할애하여 애도를 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신문』, 1922. 12. 23. ; 이숙화, 「대종교의 민족운동 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