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익 崔昌翊

국내항일 애족장(2007)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평남 평원(平原)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훈격
애족장(2007)

주요 활동

1919년 대한애국부인회 활동

관련 조직

대한애국부인회

생애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 청산면(靑山面) 교산리(橋山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03년생으로 추정된다. 어머니 박치은(朴致恩)과 함께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에 참여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박치은은 서북지역 기독교계 인사로서, 대한애국부인회 결성에 참여하여 대한애국부인회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지회 재무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은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계기를 주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대한애국부인회는 평양 지역의 여성 기독교 신자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독립운동에 방관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장로파와 감리파에서 각각 애국부인회를 만든 것이 시초였다. 임시정부는 각각 별도로 조직된 애국부인회에 연합할 것을 제의하였고, 이에 감리파와 장로파 애국부인회는 연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로 계승되었다. 대한애국부인회는 연합회 본부 아래 각 지역마다 지회를 두어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를 징수하여 이를 임시정부에 군자금으로 송금하는 등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하였다. 어머니 박치은과 함께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하여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송금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애국부인회는 1920년 10월경 증산지회장 송성겸(宋聖謙)이 일제에 발각되면서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일제는 즉시 대한애국부인회 증산지회를 시작으로 관련자 100여 명을 검거하였다. 이때 어머니, 외할머니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수 개월간 고초를 겪었다. 1920년 11월에 불기소 처분을 받고 풀려났으나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신문』, 1921. 2. 5·7. ; 『동아일보』, 1921. 11. 6.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4, 1978. ; 장석흥, 「大韓獨立愛國團 硏究」, 『한국독립운동사연구』 1, 1987. ; 김은지, 「기독교 여성 단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계와 대한애국부인회 조직」, 『여성과 역사』 39, 한국여성사학회,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