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 權殷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경기 양주(楊州)
운동계열
3.1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2009)
주요 활동
1919년 3월 18일 양주군 화도면 만세시위에 참여
관련 사건
화도면 3.1운동
생애
1872년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화도면(和道面) 답내리(沓內里)에서 태어났다. 경기도 양주군에서는 1919년 3월 13일 미금면(渼金面) 평내리(坪內里) 시위를 시작으로 3월 31일까지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그중 3월 18일 화도면 마석우리(磨石隅里)의 만세 시위는 양주군 내 만세 시위의 절정을 이루었고, 같은 날 강화의 2만 명 만세 시위와 함께 전국적인 3·1운동 전개과정에서 그 규모와 양상 면에서 새로운 변모를 예고하는 역할을 하였던 중요한 시위 투쟁이었다. 화도면 마석우리 만세 시위는 3월 18일 밤 10시에 이달용(李達鎔)의 주도하에 답내리의 구영식(具永植), 월산리(月山里)의 강선원(姜善遠)·김원석(金元石)·김필규(金弼圭)·남궁우룡(南宮又龍)·윤준(尹俊)·이승면(李承冕)·이윤원(李允遠) 등을 포함한 답내리와 월산리 주민 200여 명의 동참으로 시작되었는데, 답내리 시위대의 한 사람으로 만세 시위에 가담하였다. 시위가 시작되자 헌병이 만세 운동의 주도자 3명을 체포하였으며, 1,000여 명으로 증가한 시위 군중이 마석우리의 헌병대 병참 앞으로 가서 검거된 인사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시위 규모가 커지고 가열되자 헌병은 시위 군중에게 무차별 발포하였고, 앞장서서 시위대를 이끌던 손복산(孫福山)·신영희(申榮熙)·유상규(兪相奎)·이교직(李敎稙)·이달용 등 5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강덕녀·윤균·윤정석·원대현·이재혁 등이 중상을 입었으며, 시위에 가담한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다. 이번 만세 시위로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하였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1919년 6월 21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당하여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경성지방법원, 1919.4.25. ; 「판결문」, 경성복심법원, 1919.5.24. ; 「판결문」, 고등법원, 1919.6.21.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3·1운동사 상), 독립유공자사업기금운용위원회, 1971. ; 김정인·이정은, 『국내 3.1운동 I - 중부·북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남양주 3·1운동사」, 『구리남양뉴스』 201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