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창섭 玄昌燮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현성필(玄成弼)
출신지
함북 경성(鏡城)
운동계열
만주방면
포상훈격
애국장(2015)
주요 활동
1920년 의군부에 가입하여 행정사무 및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함.
관련 조직
의군부
생애
1898년 8월 21일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 주남면(朱南面) 대문동(大門洞)에서 태어났다. 만주로 이주한 뒤에는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북간도의 옌지현(延吉縣) 명신사(明新社) 일대에 정착하였다. 만주에서 의군부(義軍府)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당시 현성필(玄成弼)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의군부는 1919년 4월 이범윤(李範允)·진학신(秦學新)·최우익(崔友翼) 등 한말 의병장과 그 부대원들을 주요 구성원으로 하여 옌지현 명월구(明月溝)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로, 의군단(義軍團)으로도 불렸다. ‘한국강토 회복’을 목적으로 삼은 의군부의 조직 형태는 크게 본부와 중부로 나누었다. 입법권은 검사부에, 군사권은 참모부에, 행정권은 참리부에, 사법권은 법원에 위임하였으며, 전위대를 설치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듬해인 1920년에 의군부에 가입하여, 소대장 김홍극(金弘極)의 휘하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8월경까지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문서 작성과 발송 등 행정사무를 담당하였다. 의군부의 주요 활동 지역은 룽징(龍井)과 국자가(局子街) 및 두만강 대안(對岸)이었는데, 1922년 8월경 함북 일대로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고 본부로 돌아와 북간도 일대에서 모금 활동을 계속 하였다. 이러한 행적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면서, 1922년 말 붙잡힌 후 함흥으로 압송되었다. 1923년 1월 19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23년 4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옥고를 겪었다. 1928년 11월 10일에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경성복심법원, 1923. 4. 23. ; 「신분장지문원지」. ; 「형사사건부」. ; 『조선일보』, 1923. 2. 6. ; 『매일신보』, 1923. 2. 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0,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