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채 생가
정의
한말 허위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으며, 벌교 3·1운동의 배후인물이자 만주항일투쟁에 가담했던 독립운동가 이병채가 태어나 살았던 곳
현재 상태
멸실 / 현재 빈 공터로 변해 있다.
위치 정보
주소
전남 고흥군 과역면 백일리 산 343
관련 내용
이병채(李秉埰, 1875~1929)의 호는 백남(伯南), 전남 고흥(高興)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과 단발령이 내리자 허위(許蔿) 의진에 참여하였다. 1896년 허위가 서울로 올라가자 경기도에서 의병을 일으킨 민용호(閔龍鎬) 의병부대에 가담, 관동지방으로 진출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1910년에 나라가 망하자 귀향하여 낙안의 유생들과 함께 배일상소운동을 전개하였다. 1913년에도 그는 임병찬이 주도한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에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며, 3·1운동이 일어나자 현재의 순천 낙안면에 내려와 도란사(桃蘭社)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벌교장날 만세시위를 배후지도한 핵심인물이었다.
그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3년 4월에는 연해주(沿海州)에서 활동한 조선독립단군정서(朝鮮獨立團軍政署)의 김좌진(金佐鎭)·홍범도(洪範圖) 등과 함께 국내진공작전을 추진한 바 있으며, 간도를 중심으로 한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로를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과 단발령이 내리자 허위(許蔿) 의진에 참여하였다. 1896년 허위가 서울로 올라가자 경기도에서 의병을 일으킨 민용호(閔龍鎬) 의병부대에 가담, 관동지방으로 진출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1910년에 나라가 망하자 귀향하여 낙안의 유생들과 함께 배일상소운동을 전개하였다. 1913년에도 그는 임병찬이 주도한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에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며, 3·1운동이 일어나자 현재의 순천 낙안면에 내려와 도란사(桃蘭社)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벌교장날 만세시위를 배후지도한 핵심인물이었다.
그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3년 4월에는 연해주(沿海州)에서 활동한 조선독립단군정서(朝鮮獨立團軍政署)의 김좌진(金佐鎭)·홍범도(洪範圖) 등과 함께 국내진공작전을 추진한 바 있으며, 간도를 중심으로 한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로를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관련 조직
허위 의병부대 / 민용호 의병부대 /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 / 도란사(桃蘭社) / 조선독립단군정서(朝鮮獨立團軍政署)
위치 고증
「이병채 공적조서」에 대략적인 위치와 관련사실이 명기되어 있고, 현장 조사시 이기명(고흥군 과역면 백일리 거주) 이장의 제보로 정확한 집터와 자세한 정황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이병채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1, 1970, 169·299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3, 1971, 265-268쪽.
홍영기, 「한말 고흥지역의 의병항쟁」,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4,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7, 25-26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1, 1970, 169·299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3, 1971, 265-268쪽.
홍영기, 「한말 고흥지역의 의병항쟁」,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4,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7, 25-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