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金逸成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경남 창원(昌原)
운동계열
3.1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웅동면 만세시위 참여
관련 사건
창원군 웅동면 만세시위
생애
1901년 4월 12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웅동면(熊東面) 소사리(所沙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창원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창원군 웅동면의 만세시위는 사립 계광학교(啓光學校) 주기용(朱基溶)을 비롯한 교사들이 웅천면(熊川面)의 정운조(鄭雲朝)·문석주(文碩柱)·김병화(金炳化) 등과 협력하여 계획을 세우고 태극기를 준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1919년 4월 3일을 의거일로 정하고 웅동면 마천리(馬川里) 면사무소 앞에서 봉기하여 읍에 이르러 웅천리(熊川里)의 시위 행렬과 합류하기로 계획하였다. 산촌에서 은밀하게 만들어진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은 계광학교 교사들이 마을별로 상급생을 뽑아 미리 마을에 배부하였다. 그러나 거사 직전 붙잡히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4월 3일 의거 장소인 웅동면 마천리 면사무소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군중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주기용이 군중 속에서 나와 연설을 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이부근(李富根)이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군중이 뒤를 이었다. 오전 11시에는 500~600여 명으로 시위 인원이 늘어났다. 이때 주민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부르면서 웅천리로 향하여 행진하였다. 마침내 웅동 시위대와 웅천 시위대가 만나면서 시위대의 규모가 늘어나자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해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26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독립운동사』, 제3권, 국가보훈처, 1971. ; 『창원시사』, 창원시사편찬위원회,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