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 朴尙進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미상
이명(별칭)
박상세(朴商世), 박상진(朴尙鎭)
출신지
미상
운동계열
3.1운동
포상훈격
애국장(1991)
주요 활동
중국 옌지현 룽징 만세시위 주도
생애
1873년 8월 10일에 태어났다. 출생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북간도 지역의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용정촌(龍井村) 부근 취의구(取依溝)에 거주하였다. 이명으로 박상세(朴商世)와 박상진(朴尙鎭)을 사용하였다. 1919년 중국 룽징(龍井) 지역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에 들어서면서 국내외 정세가 북간도 지역에도 전해지면서, 점차 독립만세운동의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1월 기독교 대전도회 총회가 개최되어 각 지역 대표를 선정하였다. 2월에 들어서 한층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져 2월 18일과 20일에는 북간도 지역 운동가 33명이 모여 비밀회의를 개최하고 향후 운동 방향을 결정하였다. 당시 국내에서 만세운동이 계획되고 있다는 소식 또한 북간도로 전해졌다. 서울에서는 3월 1일 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고, 대대적인 만세운동이 일어나 곧 전국 각지로 전파되었다. 북간도에는 3월 7일 국내의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졌다. 곧바로 북간도 한인 대표들이 모여 비밀회의를 열고 군중을 규합하여 집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하였다. 북간도의 집회는 ‘조선독립축하회’를 명목으로 3월 13일 용정촌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를 위하여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먼저 나서 3월 10일 일제히 동맹휴학을 단행하였다. 3월 13일 집회 장소로 결정된 용정촌 서전대야(瑞甸大野)에는 근처 여러 학교의 관계자와 학생들을 비롯하여 일대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모여들었다. 12시가 되자 대회장으로 추대된 김영학(金永學)이 단상에 올라 준비한 독립선언포고문을 낭독하였다. 낭독이 끝난 후 군중이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당시 현장에는 중국군 멍푸더(孟富德) 부대가 일본의 진압 요청으로 경비 중이었다. 이들은 시위가 격렬해지자 결국 시위 군중을 향해 발포하였다. 이때 다른 한인들과 함께 시위 행렬 선두에 서서 만세를 외치던 중 중국군의 총을 맞고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유해는 한인들이 수습하여 3월 17일 용정촌 허청리(虛淸里)에 매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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