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근 金正根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김해(金海)
이명(별칭)
김흑(金黑), 김흑토(金黑土)
출신지
서울
운동계열
일본방면
포상훈격
애국장(2011)
주요 활동
1924년 흑우회 재건, 1925년 진우연맹 가입
관련 사건
진우연맹 사건
관련 조직
흑우회, 진우연맹, 일본 흑색청년연맹
생애
1901년 11월 12일에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본적은 경기도 경성부(京城府) 효제동(孝悌洞)으로 되어 있다. 이명으로 김흑(金黑)·김흑토(金黑土)를 사용하였다. 원래 국내 절의 승려로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으로 건너가 흑우회(黑友會)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가 인삼 행상을 하면서,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에 이어 와세다대학교(早稻田大學校) 정경학부를 다녔다. 1923년 4월 박열(朴烈)의 흑우회(黑友會)에 가입하였다가, 9월 불령사(不逞社) 회원 대검거를 피해 활동을 중단하였다. 그러던 중 1924년 10월부터 장상중(張祥重)·이홍근(李弘根) 등과 함께 흑우회 재건에 앞장섰다. 이후 1925년 2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在日本朝鮮勞動總同盟) 결성 대회에 흑우회 대표로 참석해 중상발언으로 공산주의자들과 갈등을 빚었지만, 고국 방문 순회강연대를 비롯해 만주와 시베리아 동포를 돕기 위해 조직된 만아교육동맹(滿亞敎育同盟) 등 민족공동의 문제에 대해 적극 참여하였다. 동시에 국내 아나키스트단체의 결성에도 기여하였다. 1925년 10월 대구에서 결성된 진우연맹(眞友聯盟)에 가입한 후 선언서와 통신문 등을 전달하며 한·일간의 연락 책임을 맡았다. 같은 해 11월 대구에서 옥중의 박열을 면회하러 온 방한상(方漢相)과 김동석(金東碩) 등을 일본 흑색청년연맹(黑色靑年聯盟)에 가입시켰다. 1926년 7월 7일 열린 일본 아나키즘 단체인 흑색청년연맹에 흑우회 대표로 참석해 공동문제를 토의하였다. 1926년 7월 23일 ‘일왕암살음모 사건’으로 수감된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가 옥중에서 의문사 당하자,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변호사와 흑우회 동지 4명과 함께 형무소로 찾아가 유해를 발굴하였다. 그 후 도쿄로 돌아와 추도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일제 경찰의 유골 반출 사건으로 항의하다가 붙잡혔다. 이 일로 한국으로 송환되었고, 1926년 8월 진우연맹(眞友聯盟) 사건과의 연루되어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징역 5년의 판결을 받고 대구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폐질환에 결렸다. 당시 “비쩍 말라 마치 해골 같아 보기 딱할 정도의 가엾은 모습이었다” 전해진다. 1927년 7월 옥중에서 단식투쟁을 벌였는데, 일제는 1928년 4월 옥중에서 사망할 것으로 보이자 출옥을 허용하였다. 이에 집으로 돌아갔으나, 일제 경찰의 엄중한 경계 속에 친구들의 방문도 허락되지 않은 채 객혈 끝에 그 해 8월 6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형사사건부(김정근/김흑토)」, 1926. 8. 19. ; 「형사사건부(김정근/김흑)」, 1927. 7. 5. ; 『自由聯合新聞』 제48호, 1930. 6. ; 조선무정부주의운동사편찬위원회 편, 『韓國아나키즘運動史』, 형설출판사, 1978. ; 『日本アナキズム運動人物事典』, ぱる出版, 2004. ; 김명섭, 『한국 아나키스트들의 독립운동 : 일본에서의 투쟁』, 이학사, 2008. ; 박찬숙, 「일제하 무정부주의단체 진우연맹연구」, 국민대 석사학위논문,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