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만 金鍾滿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김해
출신지
경북 영일(迎日)
운동계열
3.1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1992)
주요 활동
1919년 3월 22일 영일군 청하면 만세운동 참여
관련 사건
영일군 청하면 만세운동
생애
1887년 7월 4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송라면(松羅面) 대전리(大田里)에서 아버지 김기락(金基洛)과 어머니 전인순(全仁順)의 4남으로 태어났다. 1895년 3월부터 대전리에 있는 한문사숙(漢文私塾)에서 7년간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1905년 3월 대전야학교(大田夜學校)를 졸업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대전교회(大田敎會) 원로인 윤영복(尹永福)은 전국 각지는 물론 포항에서도 기독교인들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는 소식에 자극받아 청하면 덕성리 덕성교회(德城敎會)의 원로 오용간(吳用干), 덕성교회 교사로 있던 형 윤영만(尹永滿)과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거사일은 덕성 장날인 3월 22일로 잡았다. 윤영복은 3월 18일, 오용간은 3월 21일 각자 대형 태극기 1개와 소형 태극기 20개를 만들었다. 윤영복은 대전교회 집사 이준석(李俊石)을 비롯한 교인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찬동을 얻었으며, 오용간도 덕성교회 교인들에게 동참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3월 22일 오후 1시경 덕성교회 교인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덕성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시위 참여로 붙잡혔다. 이로 인해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김종만 재적등본」. ; 「판결문」, 대구지방법원, 1919. 4. 28. ;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19. 5. 27. ; 「수형인명부」, 대구지방법원, 1919. 4. 28. ; 「형집행원부」, 대구지방검찰청, 1919. 4. 28. ; 「형사사건부」, 대구지방검찰청, 1919. 4. 28.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3권, 1971. ; 3·1동지회, 『迎日三一同志史』, 1953. ; 윤보현, 『영남출신독립운동략전』 제1집, 1961. ; 이상준, 『포항의 3·1운동사』, 삼일기획,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