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金相震

3.1운동 건국포장(2005)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경남 합천(陜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훈격
건국포장(2005)

주요 활동

1919년 파리장서 서명

관련 사건

파리장서

생애

1897년 5월 21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쌍책면(雙冊面) 사양리(泗陽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진이(金震伊), 김진곤(金震坤)으로도 불렸다. 3·1운동의 계획 단계에서 유림계의 참여는 다소 미진하였다. 이는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에 유림이 포함되지 않았던 점에서 잘 드러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3·1운동을 직접 목격한 김창숙(金昌淑)은 망국의 책임을 져야 할 유림이 이번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유림계가 주도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는 운동을 펼치고자 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영남유림의 종장(宗匠) 곽종석(郭鍾錫)과 논의하여 삼남 지방의 유림으로부터 청원서에 서명을 받기로 결정하였다. 이 운동은 척사의 기준이나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달리하고 있던 전국의 유림을 하나로 규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청원서는 영남유림의 ‘곽종석본’을 기초로 하되 기호유림의 ‘김복한본(金福漢本)’의 서명자들까지 통합하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장서는 명성황후와 고종을 시해하고 한국의 주권을 침탈한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는 동시에 독립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모두 137명이 서명에 참여하였는데, 106위로 서명하였다. 파리장서 서명자 중 연령 미상을 제외하면 서명자의 80% 이상이 4·50대였던 것에 비추어 볼 때, 당시 23세에 불과한 그의 서명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慶尙北道警察部, 『高等警察要史』, 1934. ; 이윤상, 『3·1운동의 배경과 독립선언』,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 林京錫, 「파리장서 서명자 연구」, 『대동문화연구』 38권, 2001. ; 최미정, 「봉화 해저마을 義城金氏 문중의 儒林團 義擧 참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49,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