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학교 터
정의
1908년 9월 신교육을 위해 설립 개교한 사립학교이며,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에서 일어난 도립만세시위를 결의한 곳
현재 상태
멸실 / 문명학교가 위치한 자리에 운문면 3·18독립운동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위치 정보
도로명주소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로 1558
주소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230-1
관련 내용
문명학교(文明學校)는 1908년 9월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설립 개교한 사립학교이다. 운문면 일원의 유림들은 1906년 4월 9일 학교설립을 논의한 뒤 교사를 신축하여 1907년 11월 개교하고 학교명을 사립문명학교라고 칭한 후, 설립인가를 신청하여 1908년 3월 설립인가가 승인되어 같은해 9월 학생 45명으로 개교하였다.
문명학교 졸업생들은 운문면에서 일어난 3·1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0일 문명학교 졸업생 김상구(金相久)·김종태(金鍾台) 등이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서울의 만세시위 상황을 알리고, 운문면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3월 17일 밤, 김진효(金鎭孝)·손한조(孫漢祚)·김용구(金龍久)·홍해성(洪海性)·김종식(金鍾軾)·김종수(金鍾秀) 등은 문명학교에 모여 시위 계획을 논의하였다. 3월 18일 이들은 면사무소로 가서 길이 2척 되는 명주수건에 '대한독립만세'라는 글자를 쓴 기를 만들어 큰 장대에 달아 들고 김진효의 선창으로 동리를 누비면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문명학교 졸업생들은 운문면에서 일어난 3·1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0일 문명학교 졸업생 김상구(金相久)·김종태(金鍾台) 등이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서울의 만세시위 상황을 알리고, 운문면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3월 17일 밤, 김진효(金鎭孝)·손한조(孫漢祚)·김용구(金龍久)·홍해성(洪海性)·김종식(金鍾軾)·김종수(金鍾秀) 등은 문명학교에 모여 시위 계획을 논의하였다. 3월 18일 이들은 면사무소로 가서 길이 2척 되는 명주수건에 '대한독립만세'라는 글자를 쓴 기를 만들어 큰 장대에 달아 들고 김진효의 선창으로 동리를 누비면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관련 사건
1919.3.18 청도군 운문면 독립만세시위
관련 인물
김상구(金相久)/김종태(金鍾台)/김진효(金鎭孝)/손한조(孫漢祚)/김용구(金龍久)/홍해성(洪海性)/김종식(金鍾軾)/김종수(金鍾秀)
위치 고증
『동아일보』 1927년 6월 26일자 및 「김진효 등 17인 판결문」 등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방지초등학교 문명분교 교사들의 증언을 통해 문명분교가 문명학교 터임을 확인하였다.
참고문헌
「김진효 17인 판결문」, 1919년 5월 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황성신문』, 1908년 11월 3일, 「文明新釆」.
『동아일보』, 1927년 6월 26일, 「순회탐방(356) : 산물이 풍부 산천이 명미(3) - 반시의 생산이 저명, 청도 - 교육계, 사립문명학교」.
경상북도 경찰부, 『고등경찰요사』, 1934, 33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444~447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1, 1437~1443쪽.
권대웅, 「한말·일제초기 청도지역의 민족운동과 주도 세력의 성격」, 『민족문화논총』 21,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0, 305~307쪽.
『황성신문』, 1908년 11월 3일, 「文明新釆」.
『동아일보』, 1927년 6월 26일, 「순회탐방(356) : 산물이 풍부 산천이 명미(3) - 반시의 생산이 저명, 청도 - 교육계, 사립문명학교」.
경상북도 경찰부, 『고등경찰요사』, 1934, 33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1, 444~447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1, 1437~1443쪽.
권대웅, 「한말·일제초기 청도지역의 민족운동과 주도 세력의 성격」, 『민족문화논총』 21,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0, 305~3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