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서당 - 성명학교 교사
정의
1910년 김창숙이 사립 성명학교를 설립하고 근대교육을 펼친 곳
현재 상태
변형 / 가옥의 구조는 그대로이나 몇 차례 수리하였다. 기둥에 '성명학교' 현판이 걸려 있다.
위치 정보
도로명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2길 66-7
주소
경북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532
관련 내용
성명학교(星明學校)는 김창숙(金昌淑)이 1910년 청천서당(晴川書堂)에 설립한 근대식 교육기관이다. 그 재원은 김창숙이 국채보상금으로 모은 자금이었다. 청천서당은 김창숙의 선조인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을 모시던 서원으로 고종 때 훼철되어 서당이 되었다.
김창숙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08년 5월부터는 성주군국채보상의무회(星州郡國債報償義務會) 회장 이승희(李承熙)가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자, 김창숙이 이 단체를 이끌어 나갔다. 일제의 방해로 국채보상금 처리 문제가 제기되자, 그는 1910년 4월 국채보상금처리회 전국대표자회의에 성주군 대표로 참석하였다. 그러나 일진회 등 친일세력의 개입에 실망하여 탈퇴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김창숙이 국채보상금으로 모은 자금을 기반으로 김원희(金元熙)·도갑모(都甲模)·이항주(李恒柱)·이진석(李晉錫)·배동옥(裵東玉) 등과 협의하여 1910년 청천서당에 사립 성명학교를 설립하였다. 이에 성주 유림들은 '김창숙이 나와서 청천서당이 망한다.'고 공격하였다. 그러나 김창숙은 뜻을 굽히지 않고 신교육을 통해 국권수호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김창숙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08년 5월부터는 성주군국채보상의무회(星州郡國債報償義務會) 회장 이승희(李承熙)가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자, 김창숙이 이 단체를 이끌어 나갔다. 일제의 방해로 국채보상금 처리 문제가 제기되자, 그는 1910년 4월 국채보상금처리회 전국대표자회의에 성주군 대표로 참석하였다. 그러나 일진회 등 친일세력의 개입에 실망하여 탈퇴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김창숙이 국채보상금으로 모은 자금을 기반으로 김원희(金元熙)·도갑모(都甲模)·이항주(李恒柱)·이진석(李晉錫)·배동옥(裵東玉) 등과 협의하여 1910년 청천서당에 사립 성명학교를 설립하였다. 이에 성주 유림들은 '김창숙이 나와서 청천서당이 망한다.'고 공격하였다. 그러나 김창숙은 뜻을 굽히지 않고 신교육을 통해 국권수호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관련 조직
성주군국채보상의무회/국채보상금처리회
관련 인물
김창숙(金昌淑)/이승희(李承熙)/김원희(金元熙)/도갑모(都甲模)/이항주(李恒柱)/이진석(李晉錫)/배동옥(裵東玉)
위치 고증
『국역 심산유고』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청천서당은 지금까지 건물이 남아있어 위치를 확인하였다.
참고문헌
김창숙, 『국역 심산유고』, 국역심산유고간행위원회, 1979, 691~693쪽.
권기훈, 「심산 김창숙의 민족운동 연구」, 건국대학교 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00, 50쪽.
이대규, 「일제하 김창숙의 민족운동에 관한 연구」, 수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12쪽.
김희곤, 「성주지역의 독립운동과 성격」, 『한국독립운동사연구』 46,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3, 227쪽.
권기훈, 「심산 김창숙의 민족운동 연구」, 건국대학교 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00, 50쪽.
이대규, 「일제하 김창숙의 민족운동에 관한 연구」, 수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12쪽.
김희곤, 「성주지역의 독립운동과 성격」, 『한국독립운동사연구』 46,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3, 227쪽.